■ 인터뷰 - 선동열 전 야구감독

선동열 전 국가대표 야구감독은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는 선수생활 30년, 감독생활 15년의 야구 외길인생을 살아왔다. 선 감독은 내년 초 뉴욕양키스 연수를 앞둔 시점에서 ‘야구는 선동열’이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펴냈다. 거침없는 광속구로 살아온 자신의 야구인생에 대한 성찰과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그의 야구인생 후반 계획을 들어봤다.

9회말 투아웃 만루 풀카운트
결정구를 던져야 할 순간...
이를 지켜보는 게 야구의 묘미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0점대 방어율 3회의 한국야구 전설

선동렬 전 감독은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1995년까지 7년 연속(1985~1991)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고, 특히 0점대 평균자책점은 세 번이나 된다. 프로야구 선수생활 11시즌 통산 그의 평균방어율은 1.20이였다. 거의 대부분의 타자를 루상에 내보내지 않고 덕아웃으로 돌려세운 셈이다.
이 같은 그의 승리공식에 광주시민들은 열광했다. 그가 광주에선 택시를 타면 기사가 택시비를 받지 않았고, 식당에 가면 주인이 식사비를 받지 않는 특급대우를 받았다.
선 감독은 자신의 야구인생에 대해 “승리의 기쁨은 있었지만 실투에 대한 두려움과 패배, 추락에 가슴이 저미는 아픔으로 점철된 고통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야구인생 비사(秘史)를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9회말 투아웃 만루, 2-3 풀카운트. 이때 투수의 마지막 투구는 승리를 위한 결정구가 돼야 합니다. 이런 어려운 순간을, 투수뿐만 아니라 팬들은 가슴을 졸이며 초조히 지켜봅니다. 투수가 타자를 루상에 내보내지 않고 돌려세운다는 게 쉽질 않아요. 그래서 야구는 재미있는 스포츠입니다. 전 이런 가혹한 순간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두려움과 추락이 교차되는 야구인생에서 맘고생이 많았죠.”
자신이 힘들고 좌절했던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일본진출 첫해 첫게임서 세이브 실패
밤늦게까지 연습, 다음해 기적적 부활

선 감독은 1996년 일본으로 진출해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그해 일본 프로야구 개막전 히로시마 카프와의 원정경기에 마무리투수로 나섰다. 2:1로 앞선 9회말에 1점차 승리를 지키기 위한 첫 출전이었다. 그는 낯선 일본야구 첫 무대에 선 압박감으로 승점을 지켜내지 못했다. 10회 연장전까지 가서 다행히 3자 범퇴로 2이닝 4개의 탈삼진을 뽑아냈다.
한국에서 국보급 투수로 대우받던 선 감독은 일본에서 2군도 아닌 3군 교육리그까지 내려갔다. 그는 이런 추락에도 좌절하지 않고 훈련이 끝나면 유니폼 세탁소 주인과 캐치볼을 따로 할 정도로 악착같이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일본 진출 첫해에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굴욕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듬해 기적처럼 부활했다. 센트럴리그 최다인 38세이브를 기록했고, 1999년엔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일본에서 세 시즌 동안 통산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하며, 일본생활을 마칠 즈음엔 ‘나고야의 태양’이란 찬사를 받았다.
선 감독은 재기부활의 신호탄이 된 게임 내용을 소개했다.
“상대팀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였어요. 우리 팀 선발투수는 야마모토 마사였고요. 9회초 투아웃 3루 상황에서 야마모토가 안타를 맞고 1점을 내줘 3:2가 됐죠. 그러자 감독이 저를 구원투수로 올렸습니다. 돔구장은 4만5천여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 찼어요. 이런 상황에 감독이 저를 믿고 구원투수로 올리는 게 고맙기도 했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박빙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1999년 센트럴리그 구원으로 나서
리그우승 일궈낸 ‘나고야의 수호신’ 

이후 그는 여러 게임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승리를 지켜내며 ‘나고야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9년 9월30일 센트럴리그 우승 결정전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었다. 9회말 5:4로 앞선 상황이었다. 9회1사 이후 주니치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상훈 선수가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후속타자를 우익수 플라이아웃으로 잡아냈다. 이상훈 선수가 세이브를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 선수를 9회말 투아웃 5:4로 앞선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선동렬은 첫 타자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다음 타자에겐 볼넷, 만루 상황에서 다음 타자는 베네수엘라 출신 용병선수였다. 그가 친 공을 2루 뜬공으로 잡아냈다. 위기일발 상황에서 구원에 성공하며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일본진출 4년 만에 처음 맛보는 리그 우승이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2003년 주니치 드래건스의 2군 코치를 거쳐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의 감독에 취임했다. 2018년엔 야구국가대표 전임감독으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감독직을 내놨다.

선진야구 배우려 미국연수 계획
그는 내년 초 야구지도자로서 더 성장하기 위해 미국 뉴욕 양키스팀으로 연수를 떠난다. 세계 최고 리그인 미국야구의 최신 야구이론과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수학이나 과학을 접목한 야구와 스포츠의학의 흐름을 공부할 계획이란다. 미국의 청소년야구와 스포츠의 흐름을 깊숙이 살펴보고 학교스포츠의 생활화와 예체능의 조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한편, 선동열 감독은 현역시절 스트라이크를 잘 던졌지만 볼도 많았다고 한다. 직구승부를 즐겼지만 때론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하기 위해 변화구도 종종 섞어 던졌다.
그의 가치관과 삶의 궤적은 마치 직구로 승부하듯 살아온 야구인생이었다며 이런 말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삶은 치열한 노력을 기반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전 내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를 일궈왔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자신만의 공으로 화려한 승리를 거두길 바랍니다.”

<사진=일간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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