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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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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9  13: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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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은 그래도 순하고 착한 발걸음이다. 서서히 대지가 식어가면서 순서대로 낙엽이 지고 들판은 비어가고 있다. 11월 들어 두 번의 서리가 내렸지만 아직 무밭의 무청이 시퍼렇고 초록의 배춧잎은 더욱 싱싱하게 밭두렁을 뒤덮고 있다.
요즘 괴산은 절임배추를 만드느라 농가마다 바쁘게 몸살을 앓고 있지만 모처럼 배춧값의 상승으로 활기차다. 음력 10월의 보름달은 휘영청 밝아, 달 밝은 가을밤을 노래하게 하고, 가는 곳마다 졸졸 쫓아오는 달의 정겨움에 못이기는 척 자꾸 쳐다보면서 내일은 날이 좋겠구나 했다.

서울의 병원에 예약한 날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창에 종알종알 물방울이 잔뜩 맺혀있다. 밤새 온도가 많이 내려갔나?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물방울을 문질러 그림을 그린다. 동그라미를 그리면 물이 흘러내려 둥근 풍선이 되고, 하트 모양을 그리면 하트모양의 막대사탕이 되고, 꽃송이를 그리면 줄기가 아래로 자란다. 흘러내린 물방울 사이로 창밖은 아직 어둑어둑한데, 시간을 맞추려고 이것저것 서둘러 집을 나선다.

출발할 때부터 안개가 슬슬 피어오르더니 괴산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안개가 더 짙어진다. 이 동네는 물이 많고 골짜기가 많아 해가 떠도 쉽게 안개가 사라지지 않는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도 안개가 길을 메워오니 따라가던 앞차의 붉은 미등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동차 전조등(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안개가 차로 달려들어 휙휙 지나가며 뭐라고 지껄이는 것만 같다. 불과 몇 미터 앞 보이는 만큼만 가면 거기서 다시 보이는 만큼만 가는데, 그 길 끝에 길이 굽어 있는지 90도로 꺾여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코앞만 보고 가는 게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한 지, 두꺼운 모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안개 속으로 들어갈 땐 비상깜박이를 켜고 속도를 줄이지만 적잖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안개는 멀리서 보기엔 몽환적이며 시적 감정이 물씬 묻어나는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던 젊은 시절엔 무진의 안개로 인한 일탈을 나 역시 이해하고 공감했었다. 그러나 사실 늦은 밤이나 새벽, 안개에 갇히게 되면 혼자 하는 운전은 공포가 되고 두려움이 된다. 그래도 비상깜박이를 켜고 속도를 줄여 조심해서 가다보면 비상등을 켠 차가 여기저기 보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고 있다는 위로가 된다. 어느덧 햇빛이 천지를 비추면 안개는 스러지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 불안함도 안개와 퍽 비슷하다. 작금의 세태가 오리무중의 안개 속이다. 불안의 안개가 덮쳐올 때 그것에 골몰하지 말고 일상 속의 작은 일에 집중할 일이다. 보이는 곳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불안은 바위가 아니라 안개라고. 해가 높이 떠서 비추면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윤동주님의 시 <나무>에서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자면/ 바람도 자오’ 여기서 말하듯 바람이 문제가 아니고 나무가 문제라는 것. 바람을 다스리고 극복하는 나무로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의 일상을 잘 붙들고 가꾸어 나갈 일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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