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예기자 통신

스토리텔링과 음식의 콜라보
봉평 메밀과 도리깨…
지역활성화의 가능성 확인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메밀꽃이
흐뭇한 달빛에 소금을 뿌린 듯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한 구절)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열리는 효석문화제가 많이 알려지면서 이 지역의 메밀 재배면적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작가의 고향인 봉평이 소설에서 소개되면서 작은 마을이 이효석 문화마을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메밀의 고장 봉평을 널리 알리는 것이 후대들에게 물려줄 삶의 경쟁력이라고 믿어왔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 바로 어제일 같은데, 지역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축제가 관광사업으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이다.

메밀은 씨앗을 뿌린 후 결실을 거두는 기간이 60~80일로 여느 식량작물에 비해 짧다.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 전국 어디에서나 경작이 가능한 구황작물로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을 버티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봄에 작물을 심었다가 자연재해로 거둘 것이 없을 지경이 돼 논밭을 갈아엎고 메밀을 심었던 이유는 서리가 내리기 전 70일 정도의 기간만 있으면 메밀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석문화제가 끝나면서 환상적인 꽃물결을 이뤘던 메밀밭에 꽃이 진다. 메밀은 한해살이풀로 씨앗에 든 씨젖을 먹는 식량작물이다. 한 개의 꽃대에서 여러 개의 꽃이 피고 지고를 계속하면서 씨앗이 여물어간다.

메밀을 수수할 때가 되면 봉평의 지역주민들은 모두 일꾼이 돼 메밀 타작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메밀 도리깨질 소리는 메밀 타작 노동의 고됨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농악 장단과 함께 하는 노동요(勞動謠)인데, 도리깨질도 하나의 관광상품이 돼 강원민속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원도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 공연으로 향토적 소리 계승과 고증에 충실했다는 평을 받았다.

도리깨는 기름한 작대기 끝에 구멍을 뚫어 꼭지를 가로로 박아서 돌리고, 그 꼭지 끝에 2~3개의 휘추리를 잡아매서 휘둘러가며 보리, 밀, 콩, 녹두, 팥, 조, 메밀 등의 이삭을 두드려 알곡을 떠는 농기구를 말한다.

이 도리깨를 들고 목도리깨꾼이 선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종도리깨꾼 전체가 후렴을 받는다. 이 도리깨질 소리는 탈곡기가 보급되지 전에 많이 불렸는데, 탈곡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 말부터는 거의 부르지 않아 요즘은 듣기 어렵다.

구황작물의 이미지 탓에 메밀은 강원도 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나 먹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그 영양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건강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메밀은 더위로 몸이 쉽게 지치는 여름에 위장의 열과 습기를 내려주고 소화력을 높여준다. 메밀에 많이 들어있는 루틴은 몸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기 때문에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평창의 메밀부침은 다른 지역보다 얇은 것이 특징인데, 얇게 부쳐야 더 맛나고, 적은 기름으로도 솥뚜껑에 기름을 골고루 바를 수 있다. 끈적거리는 기름 맛이 쏙 빠진 것은 무의 역할이고, 얇게 부쳐지는 메밀부침이 찢어지지 않는 비밀은 바로 솥뚜껑의 힘이라고 한다.

메밀 반죽이 거꾸로 엎은 무쇠 솥뚜껑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면서 서로 달라붙어 찰지고 쫄깃한 식감을 준다. 반죽을 골고루 최대한 얇게 펴주는 게 요령인데,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은 메밀 알갱이를 직접 타서 갈고 걸러서 부치는 순메밀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한 작가의 고향에서 주민들이 문학적 배경을 살려 메밀과 도리깨를 스토리텔링과 음식이 어우러진 최우수축제로 키워낸 모습을 보면서 지역 활성화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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