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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대륙 아프리카, 4-H이념으로 희망 싹트다■ 인터뷰 - 탄자니아 아루산 4-H캠프 촌장 김만호 선교사
채희걸  |  jsssong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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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7  22: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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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3~28일 제주도에서 2019년 글로벌4-H 한마음대회가 개최됐다. 대회기간 중 세계 25개국 4-H 회원과 지도자 200여 명이 모여 4-H운동 글로벌화를 위한 방안 모색의 모임을 가졌다. 대회 폐막 하루 전엔 한국의 4-H회원 5천 명도 참가해 세계청년4-H 선포식을 가져 한국 4-H의 위상을 높였다.
이 자리에 몸 전체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감싼 탄자니아 원주민 복장의 김만호 선교사가 후배 4-H지도자와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4-H 불모지인 탄자니아의 4-H대표지도자가 돼 대회에 참가한 김 선교사로부터 탄자니아에 대한 얘기와 4-H운동 활약상을 들었다.

4500만 인구와 남한의 9.5배 땅
500년 식민재배와 55년 장기집권
가난 구제할 역군 키워내는 노년 삶

   
 

아파트 건축사업 실패로 좌절
교회서 하나님께 의탁하며 새삶

“저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산하 제일제당에 취업했습니다. 결혼 후엔 처갓집에서 하던 재봉기 판매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수원에 아파트 60가구를 지었는데 실패를 했어요. 실패에 좌절하며 쉬다가 16년간 한국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했어요. 이마저도 타이어업의 쇠퇴로 또 일자리를 잃고 교회에 가게 됐는데, 선교사로 발탁돼 탄자니아로 가게 된 거죠.”
그는 아파트 건축사업이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었다고 회고했다.

아파트 건축사업이 잘 나가더 시절, 60가구 규모의 모델하우스를 개관했는데, 고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에 40세 이상 고객에게 우선분양의 특전을 주는 추첨식 공개입찰을 준비했는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파트 투기 억제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떼로 몰려오던 고객의 발걸음이 뚝 끊겼고 건축업자한테 시달리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고.
“한창 힘차게 일을 해야 할 35세에 이런 벼락을 맞고 나서 잠을 자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꿈을 꾸었어요. 하나님이 ‘삼성그룹에서 잘 살았지만 그게 다 아니다’라 하시면서 ‘내 곁에 오라’는 계시를 주시더라고요. 하나님이 아파트사업을 망하게 하고 저를 부르는 거라 생각하고 주저 없이 교회에 가 하나님에게 저를 맡기게 됐지요.”

교통사고와 타이어사업 쇠퇴...
목사 제의로 탄자니아 선교사 수락

김 선교사는 아파트사업 실패 후에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이때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 한국타이어 본사 영업부장을 하던 고교동창이 그를 찾아왔다.
“내가 다른 것은 못 도와도 너는 열심히 일해 온 성실한 친구이니까 한국타이어 대리점을 내줄테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뛰며 영업활동을 했다. 이러다보니 4년쯤 뒤 수원에서 제일 큰 대리점으로 키웠다.

대리점이 커지면서 통제가 쉽지 않자 본사가 지역 대리점을 마구 내주면서 사업 쇠퇴의 기미가 왔다. 그 즈음 교통사고까지 당해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이 천운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녔다. 그러자 목사님이 아프리카 선교업무를 하라고 하시면서 1993년 탄자니아로 선교여행을 보내주셨다고 한다.
“탄자니아에 가니 마치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살던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다른 나라에게서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도 남을 도와야겠구나’라는 사명이 가슴을 파고들었어요. 언젠가는 해보겠다고 다짐했죠.”

이후 3년이 지난 1996년, 많은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목사님이 5대양 6대주에 선교사로 나갈 사람을 물색했고, 그는 3년 전 탄자니아 선교여행 시 다짐한 사명을 상기하며 지원했다.
당시 교회에선 결혼을 안 한 여전도사가 탄자니아에 가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선교를 결정한 터라 그녀의 완벽한 정착을 위한 영적 지원 차원으로 김만호씨를 탄자니아주재 선교사로 발탁했다. 또 다른 남자 한 분은 전도사로 지명받아 3명이 2005년 탄자니아로 떠났다.

500년 식민지배로 피폐해진 삶...
천혜의 자연환경은 무한한 관광자원

탄자니아는 중부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다. 인구는 4500만 명, 땅은 남한의 9.5배다. 이 나라는 1992년 북한과 수교했는데, 김일성이 국회의사당을 지어줬다고 한다. 1996년 우리나라와 탄자니아가 국교를 트자 북한은 철수했다.
탄자니아는 500여년 동안 외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옛날엔 아랍사람들이 들어와 국민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유럽으로 마구 팔았다. 그 후 독일,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통치를 받다가 2차대전 때 독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조상대대로 스스로가 일을 하기보다는 시키면 일을 하고 안 시키면 안하고,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는 걸인근성으로 살았다. 독립한 뒤엔 한 정당이 55년간 장기간 집권하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탄자니아는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킬리만자로 산 등 관광자원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다.

탄자니아 국민 자립심 고취에 중점
청소년 대상 4-H운동 확산교육 주력

김 선교사는 탄자니아 아루산지역에 정착해 이 나라 국민의 취약점인 자립심을 고취시키고자 우선 청소년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20㏊ 규모의 농지를 임대해 옥수수농사를 시작했지만 기술부족으로 실패했다. 이때 이곳을 찾아온 선배 전도사가 지·덕·노·체 이념의 4-H운동을 접목한 농사지도과제 도입을 권유했다.
김 선교사는 고교시절 4-H회원들이 농촌부락 개발과 불우이웃돕기 등으로 활약하던 모습을 보아온 터라 즉각 아루산지역에 4-H캠프를 설치하고 촌장이 됐다.

마침 미국교포의 자금지원이 있어서 4-H회원에게 염소 3마리를 지원했고, 첫 새끼를 다시 타지역 회원에게 분양하는 4-H과제가 시작됐다. 매주 4-H과제교육도 병행했다.
연중 두 번의 방학기간에는 4-H이념 확산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특히 500년간 타국의 식민지배로 뿌리박힌 의타심을 버리고 자립심을 높이기 위한 애국관 정립 교재를 개발해 배부하며 독서모임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3개 지역 4-H회원을 가난구제의 핵심역군으로 키우는 노년의 삶에 보람과 즐거움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생의 황혼이 새벽보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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