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70)

"예나 지금이나
실크를 능가하는
직물은 없다"

터키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약 8배에 이른다. 관광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이 중 약 50%가 농경지이고, 국민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34%, 수출의 83.7%가 농산물이다. 농업인구는 약 20%(한국의 거의 4배)에 이른다. 밀, 보리 등 곡식류, 올리브, 포도 등 각종 과일, 목화와 뽕나무를 재배하고, 양, 소 등 축산업도 농업 총생산량의 25%나 된다. 지난 2018년, 무역 분쟁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터키에 휘몰아쳤지만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업이 탄탄하게 이 어려움을 받쳐줬다.

특히 터키의 실크는 기막힌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세계 곳곳에서 나름대로 여러 직물을 짜냈지만, 예나 지금이나 실크를 능가하는 직물은 없다. 특유의 광택이나, 옷자락이 스칠 때 나는 비단의 소리는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신비 중의 신비이다. 서양에 이 귀한 실크가 전해진 것은 BC 2세기경 실크로드를 통해서이며, 이후 서방의 어떤 나라이건 정치가 안정되고 태평성세가 이어지면 먼 중국의 비단은 상류계층이 가장 동경하는 직물이 됐다.

중국의 장안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6400㎞의 비단길은 유럽인들의 실크에 대한 열망을 풀어주는 유일한 답이었다. 일찍부터 누에를 기르고 거기서 실을 얻어 비단이라는 경이로운 직물을 짰던 중국은 이 신비의 기술이 다른 나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했다. 이 비밀을 나라 밖으로 유출시키는 사람을 사형으로 다스리며 이 비밀산업을 육성 발전시켰다. 유럽인들의 비단에 대한 갈증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이 목마름을 풀어준 결정적 역사가 바로 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뤄진다.

페르시아의 두 승려가 대나무 지팡이에 누에씨와 뽕나무의 씨를 훔쳐 오는데 성공을 했다. 이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황실에서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처음으로 비단을 생산하게 됐다. 9세기에서 10세기경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의 비단이 유럽의 수요를 감당해낼 정도가 됐다. 이렇게 시작된 실크 생산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관광객들에게 싼 값의 ‘보물’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다. 실크 외에도 면직물과 축산업에서 얻어지는 각종 가죽 제품도 괄목할만한 산업이 됐다.

11월11일은 우리나라 ‘농업인의 날’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던가.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라는 의미였다. 이 말이 과연 농경중심 사회에서만 해당되는 말일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아니 5차, 더 먼 미래에도 우리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농촌은 인류의 뿌리이다. 석유를 먹을 수는 없다. 입성도 그렇다. 과학의 승리라며 석유가 만들어낸 옷도 입어봤다. 잠시 편리해서 성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구를 훼손하고 인류의 생명을 옥죄는 괴물로 되돌아오고 있다. 땅에서 나는 목화가 그렇고, 뽕나무 키워 누에 길러 짜낸 실크도 그렇고 가축들이 만들어내는 옷들도 역사 이래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지는 않았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터키를 여행하면서 필자는 농촌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터키의 ‘농자천하지대본’에 부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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