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4)

어렸을 적, 아산만이 지척인 평택의 고향마을에서는 해마다 설·추석명절, 정월대보름(음력 1월15일)과 마을제사인 동제(洞祭) 때 돼지를 잡았다. 제물이 되는 돼지는, 마을 안 누구누구네가 기른 백 몇 십근 나가는 튼실한 토종 흑돼지를 마을상조기금으로 공동구매해 도축을 했다.
도축은 으레 마을의 장사로 불린 ‘평식이 아버지’란 이 몫이었다.

먼저 큰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인 다음, 네 발이 묶여 버둥대며 고래고래 악을 쓰는 돼지의 목을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로 돌려따서 숨통을 끊어놓는다. 돼지 숨이 끊어지면 미리 준비해 놓은 뜨거운 물을 돼지 몸통에 부어가며 억센 털을 면도하듯 밀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 내는 것으로 도축은 끝난다.

고기는 추렴하듯 조금씩 똑같이 나누어 볏짚으로 묶어서는 마을 가가호호 빠짐없이 돌린다. ‘우리’, ‘함께’라는 공동체-두레의식의 발로다. 지금도, 산 돼지의 목을 식칼로 딸 때 쿨럭쿨럭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쏟아져 나오던 뜨거운 돼지 피를 생각하면, 어찔하니 현기증이 일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돼지 잡는 날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돼지 오줌보(방광)였다. 제대로 생긴 가죽축구공 하나 없이 새끼줄 타래를 동그랗게 둘둘 말아 동네 큰집 마당에서 공차기를 하고, 어쩌다 마을 인근 미군부대 철조망을 넘어오는 ‘미제 가죽 소프트볼’을 주워 벼 벤 논바닥에서 편을 갈라 야구게임을 하는 형편이었으니, 그런 아이들에게 질기디 질긴 돼지 오줌보는 훌륭한 ‘아디다스 축구공’ 이상이었다. 볼이 미어져라 입바람을 불어넣거나, 물을 넣어 쿨렁쿨렁 해진 오줌보 주둥아리를 꽁꽁 묶어 축구를 즐기는 맛이라니…

그 적과 같은 재래돼지가 우리 한반도에 정착된 건 2천여년 전, 고구려시대부터다. 그후 일제 초기인 1908년을 전후해 바크셔·요크셔 등의 외래종이 도입돼 재래종과 교배를 함으로써 품종이 다양하게 개량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 안의 사육돼지 수는 1200만 마리 이상에 양돈농가는 약 6200호다. 우리나라의 한 해 돼지 도축 마릿수는, 닭(7억2528만 마리)에 이어 두 번째로 약 1463만 마리다. 소의 도축수 75만 마리에 비하면, 20배 정도 된다.

그 돼지가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으로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10만 마리 가까이 매몰 살처분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1957년 유럽 포르투갈, 1971년 쿠바, 2007년 조지아와 러시아, 작년 중국, 올해 베트남에 이어 지난 9월17일 국내에 상륙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백신도 없고, 감염경로·전파경로에 대해서도 거의 밝혀진 것이 없어 방역당국이 기약없는 깜깜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기회에 생산성에만 매달린 우리의 동물 사육환경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해 ‘황금돼지의 해’란 말이 실로 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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