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3)

#아직은 봉건사회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던 조선조 후기(대략 1700~1800년대, 정조 임금 년간) 사회는 농업이 나라 산업의 토대였다. 이때는 벼의 연간 수확량을 가지고 농부의 등급을 매겼다. 1결(結)-800두(斗, 10말을 한가마니로 쳤을 때 80가마니) 이상이면 부농(富農), 그 절반 정도면 중농, 부농의 절반에서 4분의 1수준까지는 소농, 부농의 4분의 1이하, 즉 벼 20가마니 이하면 가장 가난한 계층인 빈농(貧農)으로 구분했다.

당시 농부 한 사람이 먹는 1년 평균 식량은 벼 일곱가마니로 농가 한 집당(세식구 기준) 벼 20가마니가 필요했는데, 빈농층은 1년 먹을 양식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이때의 상황을 보고, 당대의 경세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이렇게 탄식했다.

“농부들은 대부분 자기 땅이 없고, 모두 남(양반)의 땅을 소작한다. 일년 내내 고생하고도 추수 때가 되면, 땅 주인이 수확량의 절반을 나눠 가져가니, 600두를 추수한 농부가 제 몫으로 가져가는 것은 300두 뿐이다. 이것을 가지고 여덟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하고, 이웃에 주는 품삯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종자를 빼고, 빚을 갚고, 설날까지 먹을 양식을 빼면 남는 것은 100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세(세금)로 긁어가고 빼앗아 가는 것이 또 얼마인가. 슬프다. 이 가난한 백성들이 어찌 살겠는가?”
#그로부터 300년. 최근 KB국민은행 계열의 KB금융지주 금융연구소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 400명을 설문조사해 <2019 한국 부자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부자들이 대답한 ‘한국에서 부자로 인정할 수 있는 총자산 기준’은 평균 67억 원, 실제 부자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2억2000만 원으로 일반가구 평균소득(5700만 원)의 4배에 달했다. 이들은 수도권에 전체의 70%(22만6000명)가 몰려 살고, 서울에서는 강남·서초·종로·성북·용산 등의 자치구에 많이 거주하며, 그외 부산(2만4000명)·대구(1만5000명)·경남(1만 명)이 부자가 많이 사는 지역으로 꼽혔다. 또한 이들은 부를 키우기 위한 ‘종잣돈’을 최소 5억 원으로 봤으며, 자신들이 부를 축적시킨 주 소득원은 사업소득(47%)과 부동산 투자(22%)인 것으로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2013년생 6살짜리 유튜버가 광고수입으로 서울 강남에 95억 원짜리 빌딩을 매입했대서 세상을 화들짝 놀래키더니, 국내 상장기업의 ‘미성년자’ 주주가 26만 명(이중 6세 이하 주주가 5만9700명)에 보유주식 평가총액이 1조7300억 원이라는 국정감사 자료도 공개됐다. 나라 안 화두가 온통 돈·돈·돈 얘기다. 미래담론은 실종된 채 어린아이들은 ‘건물주’를 꿈꾸는 나라…
“복이 과하면 재앙이 생기고, 재물을 이루면 화가 이르게 된다”던 퇴계 이황 선생 가르침 아니어도, 지나친 탐욕으로 제 한 몸 망치는 이들의 얘기가 차고 넘치는… 온통 물신(物神)들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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