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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래 고약재미있는 생활속 발명이야기-글 왕연중·그림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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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5  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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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한방의서 비방으로 발명
‘잘 낫지 않은 종기엔 이명래, 이명래 고약!’
피부에 붙이는 접착성 한약제 이명래 고약은 1980년대까지 종기 치료제로 널리 쓰인 대표적인 고약이었다. 기름종이에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까만 고약을 싼 형태로, 고약을 성냥불에 달궈 종기에 붙여 놓으면 며칠 뒤 누런 고름이 쏙 빠지고 상처가 아문다. 1906년 프랑스 선교사인 드비즈 신부로부터 서양 약학을 배운 고(故) 이명래 선생(1850∼1952)이 한방의서의 비방을 바탕으로 발명했으니 올해로 꼭 106년이 됐다.

천주교 신자인 이명래 선생은 1905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사, 충청남도 아산 공세리 성당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밑에서 약의 제조법과 치료법을 배우고 한방 의서를 원전으로 이명래 고약을 발명했으며, 한의사로서의 명성을 얻은 뒤 1920년 서울로 올라와 충정로 중림동 터에 명래한의원을 차려 고약을 직접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그는 의생면허를 거부하고 무면허 불법의료인으로 있다가 광복 뒤에야 비로소 의생면허증을 받았다.

2002년 명래제약 도산하면서 모습 감춰
이명래 선생이 개발한 각종 처방에는 현대에도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골수염, 결핵성임파선염, 관절염, 만성호흡질환, 흉막염등외 여드름, 피부병, 볼거리, 치질, 동상, 화상, 욕창, 유방질환, 모든 종창에 우수한 처방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이 고약 치료인 것이며, 이 고약에도 화상, 피부병, 종기, 관절염, 유선염 등 질병에 따라 각각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고약이 있다.

선생의 사후, 이명래 고약은 ‘전통방식 유지’와 ‘대량생산’이라는 두 가지 길을 걷게 된다. 둘째 사위인 이광진씨(1996년 타계)는 1952년 ‘이명래 고약집 명래한의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고약을 계속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 씨의 사위인 임재형씨가 3대째 정통 고약비법의 맥을 이어왔지만, 결국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명맥이 끊기게 됐다. 반면 선생의 막내딸인 이용재 여사(2009년 타계)는 1956년 명래제약을 세우고 이명래 고약의 성분을 일부 변경해 대량생산에 나섰다.

1970년대까지 종기 치료제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002년 명래제약이 도산하면서 시중 약국에서 이명래 고약은 모습을 감췄다. 명래제약이 제약 허가신고를 낼 때 오행초, 가래나무 등 일부 약 성분을 공개했을 뿐 여전히 이명래 고약의 다양한 약제를 비롯한 제조법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그리고 결국 ‘이명래 고약’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명래 고약집으로 유명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빌딩 뒤편 명래한의원이 지난해 6월 호프집으로 바뀌면서다. 결국 21세기를 대표하는 신약은 후대에 명맥을 잇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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