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충북 보은

▲ 보은 대추축제장

정이품송과 법주사...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보은이 낳은 최고의 가을선물 ‘보은 꿀대추’

가을이면 대추나무에 다닥다닥 잘 익은 붉은 대추가 정겹다. 한입 깨물면 아삭한 단맛이 상큼하다. 잘생긴 대추는 제상에 오르고 혼례 때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며 잘살라고 덕담하며 새댁에게 한 아름 던져준다. 푹 끓인 대추차 한 잔은 찬바람 불 때 허기진 가슴을 녹여준다.
보은은 황토대추로 유명하다. 속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정이품송이 가을 하늘 아래 더 커 보이고, 법주사로 가는 ‘세조길’은 울창한 숲이 걷기에 그만이다. 보은은 오랜 역사와 전통, 깨끗한 물과 자연, 인정 많은 사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다.
‘속리산’ 하면 오래 전 중학교 때 수학여행의 추억이 떠오른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말티고개에서 각 학교에서 온 수학여행버스가 닿을 듯 말 듯 스칠 때 창문 사이로 여학생과 남학생 펜팔 쪽지가 오갔다. 지금은 그런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 아득한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고개를 넘었다.

▲ 법주사 팔상전

정이품송과 ‘세조길’이 아름답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입구에 우뚝 선 정이품송은 600~8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지에 가마가 걸리게 되어 “가마가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가 가지를 위로 들어 지나가도록 했다고 해서 소나무에게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사람도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에 경이로운 일이다.
공원 매표소를 지나자 5리나 되는 숲길이 잘 가꿔져 있고 옆에는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른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 마음속 깊이까지 상쾌하다. 곳곳에 걷기 좋은 길들을 조성해서 좋다. 1450년경 조선의 7대왕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어서 세조길이라 칭했다. ‘세조길’은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해 그해만 70만 명 이상이 탐방했다고 한다.

법주사부터 세심정까지 2.62㎞에 달하는 명품테마길은 근처에 ‘오리숲길’과 함께 ‘5월 걷기 여행길’에 선정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된 사적이다. 쌍사자석등과 목조건물인 팔상전은 국보로 지정됐다. 석가의 일생을 표현한 8폭의 그림이 봉안된 팔상전 처마에 달린 작은 종과 물고기 풍경이 뎅그렁! 맑은 소리를 내며 고요한 하늘에서 헤엄친다. 경내에 33m나 되는 금동 부처상이 눈부시다. 어마어마한 금불상은 바라만 봐도 부처님의 자비가 전해지는 듯하다.

문장대로 오르는 길은 팻말만 보고 다음을 기약했다. 세조 임금이 시를 읊었다고 해 이름이 지어졌다는 문장대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가히 일품이리라.
속리산 남쪽의 삼가저수지를 중심으로 상류에 만수계곡과 하류에 서원계곡은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원계곡은 제2의 화양계곡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하천 폭이 넓다. 속리산 일대를 들러보고 버섯전골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마침 대추축제가 열리는 뱃들공원으로 갔다.

붉은 대추의 축제 향연
대추축제장에 도착하자 그 규모의 크기에 놀랐다. 하늘엔 대추모양의 애드벌룬이 떠있고 내천 좌우에는 대추 코너에서는 생대추·말린 대추·과자처럼 먹는 대추편, 대추떡 등을 파는 곳과 각종 농산물 판매장, 먹거리 장터, 풍물시장이 빼곡하게 즐비하다. 사람에 떠밀려 갈 정도로 축제장을 찾은 인파가 많았다.
대추를 사고 장터에서 가을을 만끽하며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각지에서 구경 온 나들이객들로 왁자하다. 축제장에는 공연장과 전시, 체험행사 등 다채롭게 펼쳐져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좋다.

보은 황토대추는 붉고 맛이 달다. 대추는 크기에 따라 상초, 특초, 별초, 왕초 등으로 분류한다. 보은 대추는 지름 3㎝ 안팎의 큰 대추가 생산된다. ‘꿀대추’라는 명성을 이어오는 보은 대추는 생산량의 60%가 말리지 않은 생대추로 팔릴 만큼 인기가 좋다.
생대추가 인기를 끌면서 농사짓는 방법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대추나무가 크는 대로 놔두고 키웠는데, 최근에는 생대추 생산을 위해 봄이면 대추농가마다 사람의 키만큼 전지를 하며 관리를 해준다.
가을이면 나무 아래에 멍석을 깔고 장대로 두들겨 대추를 털었으나 요즘에는 농민들이 면장갑을 끼고 대추를 한 알 한 알 정성 들여 딴다. 대추에 흠이 없어야 최고의 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은대추는 보은이 낳은 최고의 가을 선물이다.

▲ 오장환 시인

천재시인의 시혼이 흐르는 곳
보은은 오장환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오장환(1918~1951)은 유년시절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을 지녔다고 전한다. 1931년 휘문고보에서 현대시의 시성이라 불리는 정지용 시인(대표작 ‘향수’)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된다.
오장환은 《휘문》임시호에 실린 ‘아침’과 ‘화염’의 두 편을 시작으로 시단에서 찬사를 듣게 된다. 오장환이 활발하게 문학활동을 펼치던 시기에 문화예술인에 대한 탄압으로 심하게 몸을 다쳐 월북했다가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오장환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장환 문학인생을 재조명하는데 앞장섰고 문학관 명예관장으로 있다.

눈물은/바닷물처럼 /짜구나 // 바다는/누가 울은/눈물인가
 - 오장환의 동시 <바다>

 
속리산 일대와 대추축제장을 돌아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봤다. 가을의 전설 같은 붉은 대추 한 알에는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장석주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보은의 땅을 밟으며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사자성어가 맴돈다. 살아오면서 은혜를 받은 갚아야 할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파란 가을 하늘에 코스모스처럼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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