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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크랜턴을 추모하며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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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1  10: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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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스크랜턴

"대한민국 여성교육의
초석을 세운 ‘스크랜턴’
그녀의 고마움을 되새긴다"

미국인 메리 스크랜턴(1832-1909) 모자가 긴 항해 끝에 조선 땅을 밟은 것은 1885년이었다.
그녀는 기독교를 전파하고 교육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조선 여성들의 지위가 낮고,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이때까지 조선에 없었던 여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스크랜턴 부인은 서울 정동에 공터와 초가집 몇 채를 사서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막상 교육받을 여학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조선인들은 낯선 ‘서양인 괴물’을 몹시 경계했고,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1년을 ‘악전고투’한 끝에 스크랜턴 부인은 1886년 5월31일 밤, 드디어 한 학생을 맞이했다. 그것도 학생의 어머니에게 딸의 신변을 보증한다는 서약서까지 써주고 입학시킨 것이다. 서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 야소교 선교사 스크랜턴은 조선인 박(朴)씨와 다음과 같이 계약하고 이 계약을 위반하는 때는 어떠한 벌이든지 어떠한 요구든지 받기로 함. 나는 당신의 딸 복순(福順)이를 맡아 기르며 공부시키되 당신의 허락이 없이는 서방(西方)은 물론 조선 안에서라도 단 십리라도 데리고 나가지 않기로 서약함/스크랜턴>

이것이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길에 버려진 여자아이, 기를 형편이 되지 않아 부모가 맡기고 간 여자아이, 학교 일꾼의 딸 등이 스크랜턴 부인의 학생이 됐다. 이화학당 소녀들은 학교에서 먹고 자고 공부했다. 빨간 옷감으로 지은 한복을 해 입혔다. 최초의 교복이었다.
뿐만 아니라 방학에는 학생들을 각 가정으로 보내며 꼭 돌아오도록 노자(여비)까지 챙겨줬다. 1887년 학생이 7명으로 늘어났을 때,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스크랜턴 부인의 노고를 치하하며 친히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을 지어줬다. 이화학당 주변에는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글, 영어, 성경, 한문 그리고 1904년에는 재봉틀 교육까지 했다. 당시로서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이 체조시간이었다.
다 큰 처녀들이 운동을 한다며 팔과 발을 벌리고 뛰는 것이 큰 구경거리였다. 이 희한한 광경을 보려고 이화학당 담장 위로 구경꾼들이 기웃거렸다. 학생들도 손을 올리기만 하면 겨드랑이가 다 드러나 보이는 짧고 꼭 끼는 저고리를 입고 체조를 한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아예 손을 들려하지 않았다. 모두가 애로 투성이었다.

일제의 제복착용 강요 등 수난 속에서도 이화의 선교사들은 유관순 같은 애국소녀들의 독립운동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학생들과 이 나라에 대한 사랑 없이는 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스크랜턴의 이 나라 사랑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와 숭늉을 사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땅에 뼈를 묻었다.

며칠 전인 10월8일은 메리 스크랜턴의 기일(忌日)이다. 그녀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서울의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며 지금 양화진에 묻혀있다. 새삼 이 나라 여성교육의 초석을 세운 그녀의 고마움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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