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0)

깊어지는 경제불황과 대량실업은 사람들을 궁핍하게 만든다. 고도 문명의 찬란한 옷을 입은 인간이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기아 퇴치를 목적으로 세워진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세계 77억 인구 중 매일 밤 굶주림에 지쳐 잠드는 사람은 15억 명, 매일 3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다.
‘돈이 없어도 일용할 빵을 얻을 수는 없을까…?’ 그런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뇌 속에서 생각해 낸 것이, 현금 없이 물건과 서비스를 맞교환 하는 거래방식 이었고, 이때 그 수단으로 생각해 낸 것이 지역 화폐(Local Currency)다.

현대 최초의 지역화폐는, 1983년 캐나다 밴쿠버 코목스 밸리(Commox Valley)에 있는 커트니라는 소도시에서 생겨난 ‘녹색달러’였다. 이 작은 도시의 주력산업인 목재산업이 침체되고 미 공군기지 이전으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고, 주민들은 손에 쥔 현금 한 푼 없이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때 영국 이민자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 였던 지역주민 마이클 린튼(Michael Linton)이 여섯명의 회원을 모집해 ‘녹색달러’라는 지역화폐를 만들어 내놓았다. ‘레츠 (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라는 세계 지역화폐의 시작이다.

‘레츠’는 일종의 ‘다자간 품앗이’로 특정지역 내에서만 유통되는 상품권이다. 지역 내에서만 소비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금과 1대 1 맞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
세계에서 ‘레츠’가 가장 활발하면서도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호주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도쿄 다카다노바바 지역의 상점들에서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의 주인공을 내세운 ‘아톰 통화’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자기집 젓가락을 가져와 사용하거나, 쇼핑백을 반납하는 고객들에게 비용 일부를 돌려줄 때 사용한다. 말하자면 포인트 적립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3월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일명 ‘미래사’)에서 ‘미래화폐’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1999년 ‘송파품앗이’의 ‘송파머니’, 2000년 ‘대전 한밭레츠’에서 통용되는 노동화폐인 ‘두루’ 등이 발행됐다. 특히 ‘두루’는 물건을 다른 회원과 거래하고 노동화폐인 ‘두루’를 벌어 갚는 식의 공동체 화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역화폐를 발행한 지자체(광역·기초단체 포함)는 2016년 53곳에서 올해 177곳으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는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한 마디로 전국에 쫙 깔렸다. 사용법도 간편해 지면서 스마트화 하는 추세다. 쓸 수 있는 곳도 시장·식당·병원 등 다양해 졌다. 전국 지역화폐 발행액도 2016년 1168억 원에서 올해 2조3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지역화폐 발행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일정부분 도움이 되겠지만, 재정자립도가 빈약한 지자체가 상품할인액만큼의 세금 보전에 따라 가중되는 예산재정 부담을 어떻게 해소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칫 ‘빛 좋은 개살구’꼴의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운 것은 나 만의 헛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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