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색농장 탐방 - 담양 커피농장

▲ 담양커피농장 농부 임영주가 커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중이다.

기자생활 접고 2012년부터 커피 재배
커피열매잼·커피잎차 등 버릴 게 없는 커피

농장에 들어서니 고소한 냄새가 났다. 체험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학생마냥 농장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은 설명을 하다 능숙하게 커피를 내린다. 커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땐 인문학 강사 같더니 직접 커피를 내리는걸 보니 전문 바리스타 같다. 그런데 자신이 키운 커피나무를 애정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소개하는 모습을 보니 그는 영락없는 농부다.

#대나무 말고 커피도 있어요
담양군 금성면에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열매를 수확해 원두를 판매하는 커피농장이 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커피농장 중 카페운영을 위한 전시형 농장이 아닌 직접 커피콩 수확을 하는 곳이다.

천안에서 언니와 함께 방문했다는 김성희 씨는 “담양에 놀러와 관광지도를 보는데 커피농장이 눈에 띠었다. 평소에도 워낙 커피에 관심이 많아서 지도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며 “마을 한가운데에 이렇게 큰 농장이 있다는 게 참 놀랍다” 라고 말했다.

사진기자 출신인 담양 커피농장 대표 임영주씨는 2012년경부터 커피나무를 기르기 시작했다. 취재차 갔던 케냐에서 주민들이 건넨 커피를 먹고 그 맛에 반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커피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대충 프라이팬에 막대기로 콩을 볶고 돌절구로 찧고 시커먼 주전자로 내린 커피였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죠. 쌉싸름하면서도 개운하고 향기롭고. 신선도를 유지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커피를 먹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부의 아들이라 그런지 가장 기본적인 생산부터 제 손으로 일구고 싶었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커피농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특허까지 출시하게 된 것이 담양 커피농장 원두 ‘골드캐슬’이다. 마을 이름인 금성면을 따서 만든 골든캐슬은 일반적인 커피콩과 달리 발효를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골드캐슬은 푸드마일리지(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자 섭취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거리)가 짧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커피벨트(커피재배에 적당한 기후와 토양을 가진 남북양회귀선)에서 수입되는 어떤 원두보다 신선도면에서는 뒤지지 않을 거에요”

커피농부가 골드캐슬을 내려 대접했다. 김성희씨와 함께 방문한 언니는 “신맛이 은은하게 나고 뒷맛은 약간 한약재 쓴맛도 난다. 향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나무의 한국겨울 생존기
커피나무를 한국에서 기르기 위해 임씨는 어떤 노력을 해야 했을까. “처음에 힘들었죠. 우리나라처럼 사계절 뚜렷한 곳에서 열대상록활엽수인 커피나무를 키우는 게 쉬울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선례가 많지도 않고요. 165㎡(50여 평) 남짓의 협소한 공간에서부터 시험 재배한 시절까지 합치면 거진 10년이네요. 커피나무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계속 노력하고 연구했습니다. 온도를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보니 촛불도 켜보고, 석탄도 때보고 석유난로도 가져다 놔보고요. 동해·냉해로 나무 많이 죽였죠. 몇 천개의 씨를 뿌렸는데 풀하나 안 난적도 있어요.”

담양 커피농장은 현재 1320㎡(400여평)의 온실에 큰나무 200여 그루, 작은나무까지 합하면 수천 그루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최근 아열대작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저희 농장 견학을 와요. 농장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커피나무는 손이 많이 안 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해충기피 작물이라 약값도 적게 들고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이 가능하고요.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죠.”

#기자에서 농부까지…
그는 일간지 사진기자였다. 마감에 쫓겨 압박을 받고 긴장으로 일상을 보내다보니 소화불량이 심해지는 등 힘든 생활을 했다고 회상했다. 세계 방방곳곳을 다니는 이점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생소한 작물을 키우면서 수년간의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기자생활을 견뎠던 정신력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금방 포기했을 거예요. 내가 커피에 반하게 된 것도 취재차 갔던 케냐에서 경험 때문이니까. 기자 생활 덕에 커피농부도 할 수 있었다고 봐요.”

기자를 은퇴하고 농사를 하면서 임씨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제가 사람과 사건을 찾아갔죠. 이제는 사람들이 체험을 하러 제게 찾아와요. 더욱이 정치나 경제 같은 딱딱한 문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러 오잖아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로 소통하니 이보다 더한 힐링이 있을까요. 농장은 마감도 없고 압박도 없어요. 식물은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보여주죠. 그게 참 힘이 됩니다.”

물론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다.

“힘든 것도 있죠. 월급쟁이 생활만 하다가 제 사업을 꾸리려니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큰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시설유지를 위해서 어쨌든 수익을 내야잖아요. 다행히 커피나무는 버릴 게 없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커피농장에서는 커피 말고도 커피나무에서 나오는 다양한 부산물들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커피열매의 당도는 복숭아나 딸기보다 높은 편이라 임씨는 이를 이용해 커피잼을 만들어 판매한다. 또한 커피열매의 껍질을 말려 만든 카스카라나 커피잎으로 차를 우려 마시는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농사는 내가 커피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로스팅을하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먹으면서 즐길 수도 있고 자신만의 카페를 운영해 손님들에게 좋은 커피를 제공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내가 일군 농장에서 열매를 수확해 커피를 내리고 이 커피로 손님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보람되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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