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13주년 특집 - 전남 화순 도곡·능주면 생활개선회 수십년째 효 실천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에서 장난희(고두심)의 딸 박완(고현정)은 스스로 뺨을 때리며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본다.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듣고 제 인생부터 걱정한 이기심을 자책하는 것이다. 대체 자식 된 도리란 무엇이기에 우리는 항상 부모에 대해 부채감이 있는 것일까.

바로 ‘효’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오랜 시간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형성된 효문화가 있다. 이를 제대로 행하지 못했을 때 뒤따라오는 자책감은 모든 자식들의 짐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효도의 형태도 변한다. 예를 차리거나 정성으로써 효를 행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부모를 해외여행 보낸다거나 유명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얻어주는 등 자본주의 시대답게 소비를 통한 효도가 많이 행해진다.

그러나 무등산에서 지장산으로 내려선 능선이 지나는 너릿재 너머 전남 화순에는 소박한 풍속을 지키며 여전히 정성으로 어른을 공경하는 농촌여성들이 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사찰 운주사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 화순 8경이라 불리는 적벽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화목하고 순하다’는 지역명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 마을회관에 모인 도곡면생활개선회원들과 마을 어르신들

어느새 20년이 훌쩍…
화순군 도곡면의 화순 도곡면생활개선회(회장 명형엽)는 21년째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목욕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매년 5월8일 어버이날이 되면 동네목욕탕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씻겨드리고 점심을 대접한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하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사라져가는 ‘효’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렇게 긴 세월 꾸준하게 지역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었던 도곡면의 저력은 무엇일까.

"그냥 해야 하는 거니까 하는 거예요" 명형엽 도곡면생활개선회 회장의 말이다.

30여 년 전,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도곡면에 오게 된 명형엽 회장은 도곡면생활개선회 초기 멤버다. 20년 역사를 가진 도곡면생활개선회가 효도 봉사를 시작하던 때부터 함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랑의 집 같은 데 가서 봉사했어요. 장애인들을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들 돕고. 그런데 돌아보니 우리 지역부터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멀리까지 갈게 아니라요."

그렇게 시작된 봉사는 한해 한해 쌓여 도곡면생활개선회의 의무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도곡면 회원들. 오랜 시간이 흘러 전통이 됐으니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예전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까지 업어서 차로 태워가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도 나이를 먹다 보니까 이제 업어가지는 못하겠더라고.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끝까지 해야죠.”

도곡면 회원들은 지역 어르신들을 씻기다 보면 자연스레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 한다.

전형초 회원은 "우리 어머니 씻겨드리다 보면 속상해 눈물 핑 돌 때가 있는데 이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매년 오실 때마다 허리가 더 굽어있어 늙어가는 게 느껴져요." 라고 말했다.

양동례 회원은 “목욕 봉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안 나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나중에 들어보면 요양병원에 갔거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그럼 참 기분 이상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는 회원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재주만큼이나 가득한 열정
이뿐만 아니다. 도곡면생활개선회는 명절 때도 지역 어르신들을 모신다. 매년 설날에 떡국을 직접 끓여 대접하는 것이다. 이 모든 행사를 위한 기금은 회원들이 제초작업과 교통량 조사를 해서 마련한다. 윤금애 회원은 “매년 9월에 호산리 도로변이나 소공원에서 풀 베서 기금 마련해요. 도로에서 교통량 조사도 하고요. 그걸로 우리 어르신들 음식 대접하는데 일하면서도 뿌듯하죠” 라고 말했다.

도곡면 쌍옥리 마을회관에 가니 어르신들이 모여있었다. 박남례 할머니는 “매년 보니까 가족 같고 좋다. 생활개선회가 참 좋은 단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홍갑순 할머니는 “회원들이 부르는 어버이의 은혜를 들을 때 소중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도곡면생활개선회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는 활동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농악단. 마당극과 탈춤, 사물 진도굿 등 재주도 다양하다. 공연이 있을 때면 밭일을 마치고 모여 늦게라도 꼭 연습한다고 한다. “연습할 곳이 없을 땐 하우스에 모여서 했지.(웃음)”

이들은 농악단 공연으로 지난 4월 남도국악제에서 수상했다. 물론 요양원에도 방문해 노래와 여흥으로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도곡에서 취재를 하는 내내 이들에게서 자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고 지역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31명의 농촌 여성들. 이들이야말로 지역사회의 귀감이다.

문화로 전하는 효
조선시대 능주목이었던 능주는 일제강점기에 화순군 능주면으로 합쳐졌다. 능주는 그만큼 독자적이고 역사 깊은 곳이다. 역사가 깊은 곳이니만큼 화순군 능주면생활개선회의 효심 또한 지극하다.

능주면생활개선회는 8년째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신나는 예술여행'을 개최한다. 어르신들의 문화를 충족하고 공연을 통해 함께 교감하기 위해서다.

신나는 예술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문화순회사업이다. 능주면생활개선회는 매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8년째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입소문을 타고 지역의 어르신들뿐 아니라 지역민들도 함께 즐겨 찾는다고 한다.

올해는 5월10일 능주초등학교 강당에서 200여 명의 면민과 지역 어르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열렸다. 가야금과 함께 떠나는 음악여행으로 진행됐고 가야금과 콘트라베이스,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 가야금 산조와 아리랑 같은 전통음악, 영화음악이나 동요 등 지역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미향 회장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8년간 진행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웃과 나눌 밑반찬을 준비중인 한천면생활개선회 회원들

정성 가득한 반찬 전달키도
화순군 한천면생활개선회(회장 이금순)에서는 지역 어른에게 밑반찬을 만들어 전하기도 한다. 한천면생활개선회원 20여명은 쇠고기장조림, 열무김치 등을 만들어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취약계층 50가정에 반찬을 배달한다. 이금순 회장은 “정성 가득한 반찬을 만들고 배달하면서 행복도 함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효의 형태가 많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가장 기본은 진심 어린 마음이다. 마음이 사라진다면 억만금이나 좋은 건강식품을 사준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남 화순군에는 이러한 마음을 지키며 사는 농촌여성들이 있다. 이들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나아가 주변의 어른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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