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66)

"새로운 풍조에 밀려
색동저고리 ‘꼬까옷’도
이제는 인기상품 대열서
뒤로 밀린지 오래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에 풍족한 먹거리, 거기다 일 년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달이 뜬다. 기쁨으로 들뜨기에 부족함이 없는 날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AD 32)에 왕이 육부(六部)를 둘로 나누고, 왕녀(王女) 두 사람이 부내(部內)의 여자를 이끌도록 해, 7월16일부터 날마다 길쌈(가정에서 베·모시·명주·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하고, 8월 보름이 되면 한 달 동안에 걸친 길쌈 성적을 심사해 진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이를 ‘가배(嘉俳)’라 했는데, 이것이 곧 오늘날의 한가위라고 한다. 이 풍성한 축제가 풍년을 허락한 신(神)과 먼저 가신 조상들께도 감사하는 명절로 발달된 듯하다.

여러 행사와 놀이 가운데 길쌈대회로 추석잔치의 문을 연 것도 매우 생산적이다. 축제에서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서고 싶어 한다. 그렇게 ‘추석빔’이 등장했다. 추석빔의 ‘빔’은 ‘보임’에서, 또는 ‘치장한다’는 뜻에서 시작됐다고도 한다. 결과적으로 예쁘게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추석빔은 어린아이들을 비롯해 온 가족은 물론 머슴들에게도 내려졌다.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하는 배려였다. 당시 어른들이 입었던 소박한 옷에 비해 어린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혔다. 빨강·파랑 등 선명하고 밝은 색깔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추석빔에는 무더웠던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왕실에서도 추석 전날 왕비가 입고 있던 여름 홋당의를 벗고 겹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 모든 궁녀들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추석잔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역시 배려였다.

이 따뜻한 모든 배려 뒤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힘겨운 노동이 있어야 했다. 삼, 모시, 목화를 심고, 누에를 기르는 것부터 길쌈해 직물을 짜고 곱게 물들여, 호롱불 아래서 무병장수와 길복을 기원하는 수까지 놓아가며 바느질을 했다. 아이들의 옷만이 아니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의 옷을 그렇게 만들어야했다. 어디 그 뿐인가. 추석 당일엔 대가족이 먹을 먹거리에 밀려오는 손님들 대접에 잠시 쉴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도와주지도 않았다. 주부, 여자들만의 중노동이었다.

추석엔 우리 민족의 75%가 고향을 찾는다고 했다. 온 가족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명절의 기쁨을 가린다. 때문에 해외로 여행가며 차례음식을 싸들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연휴기간에 대도시 호텔 투숙을 예약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시골의 부모가 서울 아들집으로 명절을 쇠러 오는 사례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물론 ‘추석빔’ 풍속도도 많이 변질됐다. 새로운 풍조에 밀려 색동저고리 같은 ‘꼬까옷’도 이제는 인기상품 대열에서 뒤로 밀린지 오래다.

아름답게 꾸미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추석’을 기대하는 것은 어느새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 돼버린 듯하다.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나 아쉽다.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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