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06)

‘구월’ 하면 낱말 자체에서 만도 가을냄새가 물씬 난다. 여름내 더위에 지쳐 늘어질대로 늘어졌던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리고 도슬러도 본다.
올 구월에는 8일 백로(白露, 음 8.10), 13일 추석(秋夕, 음8.15), 23일에 추분(秋分, 음 8.25) 절기가 들어 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당시 우리 전통사회 농촌의 달거리 모습을 운문체 가사로 지은 <농가월령가>-8월령을 보자.

‘팔월이라 한가을이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은 열매 맺고 만물 결실 재촉하니 /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북어쾌 (한줄)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 보세./새 술 오려 송편(일찍 여문 쌀로 빚은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 성묘를 하고 나서 이웃끼리 나눠 먹세.’

24절기 중 열 다섯 번째 절기인 ‘백로’는, 낱말 뜻 그대로 흰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절기다. 장마가 걷히고 밤기운이 차가워져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다.
‘칠월에 든 백로에 패지 않은 벼는 못먹어도, 팔월에 든 백로에 패지 않은 벼는 먹는다’, ‘팔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는 대풍을 예견하는 속담도 전한다. 조상묘 벌초도 이때 한다.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이고, 이때부터 밤이 길어진다.
또 이때부터는 우렛소리가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 그리고 논과 밭의 곡식을 거둬 들인다.
그런가 하면, 문밖 나들이가 쉽지 않았던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주어지는 ‘추석 특별 친정나들이 휴가’인 ‘근친(覲親)’풍속이 행해지던 때가 추석-한가위 때였다.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 다녀갈 때 / 개 잡아 삶아내고 떡상자와 술병이라 /…/ 가을 하늘 밝은 달에 마음 놓고 놀고 오소.’
정월의 설 명절과 함께 우리민족 최대명절의 하나였던 추석-한가위 때의 풍요에 빗대어 옛 선인들은 나날의 삶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염원했다.… 지금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딱 이런 신라사람들의 마음 같았으면 좋겠다.

‘팔월이라 한가윗날 달이 뜨걸랑 / 무엇을 하다가 이겼다는 자(者)들이여 / 그 이긴 기쁨 만에 취(醉)하들 말고,/ 그대들에게 져서 우는 자들의 / 설움을 또 같이 서러워 할 줄 알라/…/ 서럽고도 또 안 서러울 수 있는 자여 / 한가윗날 달빛은 더 너희들 편이어니.’
ㅡ미당 서정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중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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