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과 사람들 - 지리산 제철 음식학교 고은정 교장

자연스러운 발효가 아닌 산분해간장은 대표적인 식민지 유산

“시의 적절한 음식이 바로 제철음식이죠”

▲ 지리산 자락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며 그녀만의 음식철학을 전파하고 있는 고은정 교장.

“오늘은 뭘 먹을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쯤은 생각하는 이 물음에 당당히 ‘시의적절(時宜適切)’ 이란 답을 내놓은 사람. 바로 지리산 제철 음식학교의 고은정 교장이다.
“시의적절한 음식, 그때에 마땅한 음식, 바로 ‘제철음식’이죠. 제철음식의 정의는 아주 쉬워요. 제일 맛있다. 제일 저렴하다. 제일 요리하기 쉽다. 예를 들어 볼까요. 꽃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은 바로 ‘가을 꽃게’를 사서 찜통에 찌는 겁니다. 굳이 요리를 할라치면 여기에 간장이나 파, 마늘 정도만 곁들이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하루 세끼 소박한 일상의 끼니를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시대가 됐다. 화려한 외식과 반조리 식품을 사먹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밥상을 차리는 일머리가 점점 퇴화하고 있다. 밥을 해먹는 일이 특별히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는데. 여기에 언감생심 ‘제철음식’이라니.

밥을 짓고 이야기를 나누는 ‘지리산 제철음식학교’
이에 약선요리 연구가, 발효음식 전문가이며 청와대 관저의 전통장을 담당했던 고은정 교장은 지리산 산내면 실상사에서 5분 거리에 ‘맛있는 부엌’을 오픈해 일반인들에게 제철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이 공간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6개월 넘게 수강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1년간 한 달에 한 번 1박 2일 동안 특별한 것 없는 밥 짓기, 제철 재료로 반찬 만들기, 그 계절에 맞는  김치 담그기와 장 담그기를 배운다.
“1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나면 밥상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건강하지 않은 음식은 더 이상 찾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특히 어린아이 일수록 건강한 입맛을 갖게 되면 평생 건강할 수가 있어요. 음식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가 없어요.”

지역 밥상모임 통해 요리가 주는 즐거움 전파
고은정 교장은 마을 사람들과 5년 넘게 마을 밥상 모임도 해오고 있다. ‘아내를 가출시키자’라는 슬로건으로 남자 농부들만을 대상으로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강의 또한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재료 다듬고 씻고 삶고 다 먹고 설거지 까지... 한 끼 밥상을 차려내는 수고로움을 몸소 느낀 아버님들은  집에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네요. 아내가 밥 할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식탁을 닦고, 재료 하나라도 다듬어주고, 반찬투정은 이제 옛말이라고 어머니들이 더 좋아하세요.”

발효 없는 산분해간장은 일본 식민지 유산
밥을 짓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을 만나는 ‘제철음식 학교’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고은정 교장이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집집마다 담그는 간장이 아닌 대량 생산돼 나오는 간장에 모든 요리를 의지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가래떡을 전통간장과 들기름에 찍어 맛보여주는데,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에 길들여진 젋은 사람들이 감탄을 하며 맛있다고 합니다. 간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면서요. 시중에 파는 간장은 절대 이런 맛이 나지 않거든요. 산분해간장은 청산돼야 할 대표적인 일제 식민지 시기 식품입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당시 군수물자로 한반도에 들어 온 산분해 간장은 콩을 발효하지 않고 염산으로 단백질을 분해해서 만든 간장맛 소스예요. 미생물이 진행하는 발효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간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고은정 교장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밥상독립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발효없는 산분해간장은 단백질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인 3-MCPD 등이 문제가 돼 식약처에선  올해 산분해간장의 규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산분해간장이 섞인 혼합간장을 50% 이상 먹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고은정 교장은 장담그기 교육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전통 간장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진정한 ‘밥상의 독립’을 제철 음식학교를 통해 꼭 이루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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