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란 농촌진흥청 농식품자원부장

"우수 유용미생물 선발을 넘어
선발한 균주에 적합한
맞춤형 발효식품 개발과
산업적 시스템 구축까지
일관체계화가 필요하다

우리 균주만 사용해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차원을 넘어
진정한 품질 경쟁력을 갖고
브랜드 이미지로 대결할 수 있는
한국형 미생물 개발해야"

▲ 김행란 농촌진흥청 농식품자원부장

우리 국민들에게 발효식품은 소울푸드이자 자랑할 만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김치, 장, 젓갈, 식초, 술 등 발효식품은 우리의 식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과거에는 가정에서 절기마다 직접 만들어 먹었다. 발효식품을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시기에는 산업적 가치가 없었지만, 사회환경이 변화하면서 대량 생산 또는 산업적 생산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갖게 됐다.
그렇다면 발효식품의 핵심은 무엇일까?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발효식품은 ‘미생물 과학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장류의 경우, 메주의 미생물인 세균, 곰팡이, 효모가 장의 품질과 맛을 좌우한다. 곰팡이는 콩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분해해 구수함(아미노산)과 단맛(당류)을 내게 하고, 세균이나 효모는 이외에 다양한 향미를 만들어 장의 맛을 풍부하게 해준다. 또한 발효하는 과정에 신규물질이 생성되고 독성물질이 분해돼 기능성과 안전성을 더해준다.

이처럼 중요한 미생물 활용에 있어서, 우리는 자연의 복합균 형태로 활용해 다양한 풍미를 갖는 발효식품을 선호하는 반면, 일본은 핵심 미생물 균주를 선택적으로 적용해 균일한 맛을 내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일본은 핵심균주를 종균화해 대량 생산에 적합한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산업화에 한발 앞서 나갔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발효식품을 산업적으로 제조하는 과정에서 수입산 종균 사용으로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막걸리를 예로 들면, 국내 대부분 제조업체는 수입산 종균으로 제조한 입국(발효제의 일종)으로 막걸리를 제조해왔다. 막걸리의 인기와 함께 약 200억 원 정도의 입국 제조용 곰팡이가 수입됐으며, 그 중 120억 원(2014년 기준)의 로열티가 일본에 지불됐다. 이외에도 제과·제빵용 효모, 과실주용 건조효모, 프로바이오틱스용 유산균 등도 일본과 EU 등에서 대량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발효식품의 산업적 생산과 부가가치가 증가할수록 우리 발효식품의 기술적 독립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고야의정서는 ‘미생물을 포함한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 및 승인을 받고 발생한 금전적·비금전적 이익은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한국형 미생물을 신속히 발굴하고 활용기술을 개발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번 일본의 반도체산업 핵심소재 수출 규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적인 독립성이 없는 경우 언제든 산업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의 발효미생물 연구는 후발주자이지만 과거부터 다양한 발효식품을 섭취해 왔고, 뚜렷한 사계절로 다양한 미생물이 생육하며, 아직도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효를 통한 발효식품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우수한 유용 발효미생물 발굴의 가능성은 높다.
앞으로 한국형 미생물 기술 개발은 우수한 유용미생물의 선발을 넘어 선발한 균주에 적합한 맞춤형 발효식품 개발과 이에 맞는 장비와 공정 등 산업적 시스템 구축까지 일관체계화가 필요하다. 또한 연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시급성과 경제성만을 따지지 말고 후손들에게 부가가치 높은 자원을 물려주고 우리 발효식품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초연구라는 점을 감안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균주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차원을 넘어, 진정한 품질 경쟁력을 갖고 브랜드 이미지로 대결할 수 있는 기술(제품) 개발로 한국형 미생물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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