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천 이수진씨

■  기획특집 - 청년 여성농부의 희로애락

충남 서천에서 허브와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 이수진씨는 귀농 3년차 새내기 농부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국토연구원에서 탄탄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마음속 오랜 바람이었던 ‘친환경농부’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날 홀연히 사표를 던졌다. 쉽지 않은 여성 귀농인의 꿈을 이룬 그녀가 전하는 생생한 희노애락 농촌적응기~~

새내기 여성 농부 이수진씨가 손수 농사지은 바질을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새내기 여성 농부 이수진씨가 손수 농사지은 바질을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직장생활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하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은행일도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다녀와야 하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농사는 책임감이 따르고 고되기도 하지만 상사의 눈치 안보고 내 마음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식탁이 풍성해서 좋아요. 둥글레를 직접 캐서 끓여먹고, 망초대, 비듬나물, 들판에 흔하디 흔한 새순들을 꺾어 조물조물 무쳐 먹는 맛이 기가 막혀요. 거기에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다 보니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점점 더 건강해 지는 것 같아요. 저를 따라 최근 같이 귀농한 엄마도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는데 많이 좋아지셨어요.

독일에선 허브를 약재로 많이 쓰거든요. 유학 중 접한 허브를 유기농으로 직접 길러 판매할 땐 정말 내 인생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통해 익힌 북아메리카 인디언 농업이나 생태학을 직접 실천해 보고 무엇보다도 농약 사용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저만의 농업철학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지금의 제 삶이 아주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친환경 농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제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거든요.

농촌에 자리잡을 때까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요…

처음에 ‘쉽게 땅 사고 내가 조금 몸 움직여 집 짓고 살면 되겠지’라고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과수원 터 잡고 집 짓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각종 인허가에 토목공사에 관정도 파야하고... 집 터 뒤 산비탈에서 거대한 암반이 나오는 바람에 굴삭기를 동원한 공사가 한 달이나 걸려 경제적인 손실이 많이 발생해 대출까지 받았어요.
교통이 불편한 것도 힘든 점 중에 하나예요. 하루에 버스가 3번 밖에 다니지 않아 문화생활은 꿈도 못 꿔요. 버스 타고 시내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를 놓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몰라요. 농촌생활 하려면 무엇보다 운전을 잘해야 해요. 좁은 농로를 이리저리 뚫고 다니려면 운전에 능숙해야 하는데, 제가 아직 면허가 없어 고전 중이랍니다.
아! 그리고 벌레요. 우리 블루베리 과수원이 이전에 밤나무가 많았던 곳이어서 지네가 엄청 많아요. 지네가 밤나무를 좋아한다고 마을 어르신들이 그러더라구요. 밤에 잘 때 한번 지네가 방으로 기어들어 왔는데, 생각보다 크고 차가운 느낌이어서 기겁을 했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같이 귀농했던 친구 2명이 떠났어요…

귀농교육을 받을 때 3년이 고비라고 하더라고요. 최소 3년을 버티면 농촌생활에 정착할 수 있다고요. 같이 귀농했던 여성 농업인 2명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간에 도시로 돌아가 너무 슬펐어요. 남자들은 육체노동이 필요한 농촌 일을 거들거나 단기알바로 버틸 수가 있는데 여성농업인들은 그럴 수가 없는 게 현실이예요.
농사일이 내가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비나 폭염 등 날씨변수가 수익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월급과는 달리 수입이 들쑥날쑥 해 계획적으로 가계를 꾸려나가는데 애로 사항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농촌이죠~

하지 이후로는 해가 늦게 떠요. 알람소리가 아닌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기상하는 게 좋아요. 친환경 농법을 쓰다 보니 그날그날  ‘증발량’을 체크하고 작물 상태를 살펴서 물을 줘야 하는데 이른 아침 농장을 찾아 신선한 바질과 제가 좋아하는 작물에 물을 주는 느낌이 풍요로워요.
서천의 베테랑 농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유달리 밝은 시골의 밤 달빛 아래 산책은 농촌생활의 보너스죠. 서울 친구들은 귀농한 저를 보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독일 유학친구들은 별 말이 없어요. 거긴 워낙 다양성이 있는 사회니까요. 어쨌든 3년이 지난 지금 제 귀농 대차대조표는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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