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남 나주‘기분 좋은 농부’김양수 대표

▲ 10여년만에 진짜 농사꾼이 됐다는 김 대표는 귀농닥터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육과 사람·열정이 성공 밑거름…귀농 현장견학 잇달아

전남 나주시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라남도를 대표했다.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를 일컬어 부르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다. 나주시에서도 문평면은 그 중심 지역으로, 산악과 호수로 둘러싸여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손꼽히는 고장이다. 문평면은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이 3년간 귀양살이를 한 곳으로, 이곳 주민들과의 활발한 사상적 소통이 훗날 조선 건국의 민본정치 사상을 다지는 기초가 됐다고도 전한다.

▲ 아내 나정희씨가 직장이 한가한 틈에는 잠깐씩 농장에 들러 일손을 돕는다.

작년 학생 체험객만 3만5천여 명,
‘귀농닥터’에도 선정돼

‘기분 좋은 농부’ 농장 김양수 대표(52·나주시 문평면 복룡마을)는 나주시 문평면의 대표적 귀농 성공사례로 꼽힌다. 귀농 10여년 만에 제법 수익도 올리는 안전한 농업경영 기반을 다진 것은 물론 나주시에서는 유일하게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귀농닥터’로 선정됐다.
“직장생활이 항상 불안하기도 하고 또 저한테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족들이 귀농을 썩 찬성한 것은 아닌데, 농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많이 들어서 일방적으로 귀농을 강행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김 대표는 최근 포도를 포장하고, 소비자들에 공급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김 대표는 광주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졸업 후 취업도 광주에서 했다. 또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여섯에 결혼도 했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30대 후반이 지나면서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도 느껴지고, 힘들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귀농을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귀농할 만한 곳도 찾아보면서 농사에 대한 관심을 갖다보니까 어느 날부터는 귀농을 미룰 수가 없더라고요.”

귀농 초기 실패를
낮에 아르바이트, 밤엔 농부로 극복

김 대표는 42살이던 2010년에 처가가 있는 나주시 지금의 농장터로 귀농을 실행했다. 귀농 초기에는 뭐든지 자신이 있었다. 고추, 양파, 단호박, 복숭아, 청양고추 등 할 수 있는 것이면 다 손을 댔다. 그렇게 귀농자금으로 가지고 갔던 자금도 3년 만에 바닥이 났다.

“농사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경험도 없이 너무 많은 농작물에 손을 대다보니 다 실패를 했지요. 그래도 가족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어서 나중에는 농사와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면 다 갔지요. 낮에는 알바 그리고 집에 와서는 밤늦게까지 농사를 지었지요. 그러는 와중에 서서히 농사도 감이 오기 시작하고, 또 이웃과도 사귀고 전문적인 농사과정도 이수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농사꾼이 되어간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 대표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주시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농업대학 등 닥치는 대로 교육을 받았다. 사회활동도 시작했다. 친구도 사귀고 지역사회의 각종 단체 활동은 물론 마을위원과 새마을지도자 등 활동에 발 벗고 나섰다.

“교육을 받고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다보니 농사가 더 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농작물을 포도와 표고버섯 두 종목만으로 한정해서 집중했는데, 성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오후에 직장을 다니는 아내(나정희·52)도 오전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매출도 매년 늘면서 농사꾼으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지요.”
처음 2640㎡(약 800평)로 시작한 포도하우스는 현재 6930㎡(약 2100평)로 늘었다. 여기에 표고버섯 시설 4620㎡(약 1400평) 등도 매년 큰 폭의 매출 증가를 나타내면서 지난해 소득만 해도 1억여 원을 훨씬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경사도 많았다. 김 대표의 농장이 우수귀농인 현장견학처로  선정된데다 학생들을 위한 ‘버섯따기 체험장’을 운영하면서 연간 체험객만 3만5천여 명이 넘었다.
“귀농하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세월이 흐른 느낌입니다. 어려움도 많았는데, 지금은 잘 정착된 것 같아서 잘했다는 생각이 큽니다. 더 감사한 것은 막 귀농해서 집안이 어려웠는데도 아들·딸들이 힘든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아빠를 도와주면서도 지금은 어엿한 직장에 합격해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서 더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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