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부산

▲ 해운대 전경

삶에 지쳐 도망쳐 닿고 싶은 곳은 부산역
삶이 엇갈린 피난민들의 애환도 담긴 곳


삶에 지쳐 도망치고 싶을 때 기차에 몸을 싣고 온갖 시름을 잊은 채 가 닿고 싶은 곳은 아마도 부산역이 아닐까 싶다. 해운대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다 이름 모를 갈매기와 눈 맞추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파도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힘이 솟는 곳 부산이다. 또한 6.25 전쟁 때 영도대교에서 만나기로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식구들의 삶이 엇갈린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국민가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 구절만 들어도 신산(辛酸)한 세월의 축소판이 느껴지는 곳이다. 최근에는 감천문화마을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벽안의 시조 사랑에 색다른 감흥
얼마 전에 ‘시조 여름 세미나’가 해운대의 한 콘도에서 있어서 부산에 다녀왔다. ‘시조의 세계화를 위한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전국에서 시조시인 200여 명이 모였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미국의 데이비드 맥캔 교수는 한국인보다 유창한 발음으로 신명나게 시조에 관한 견해를 펼쳤다. 미국에 널리 퍼지는 시조 사랑, 시조의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우리 고유의 가락인 시조를 미국인을 통해 전해 듣는 황진이의 시조는 색다른 맛을 주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여간들 엇더리 -황진이-

세미나에 참가하면 책에서 작품으로만 알았던 시인들을 직접 만나서 교류하고 친교를 쌓을 수 있어서 좋다. 특히 무작위로 배정되는 방에서 5~6명이 하룻밤을 자고 나면 서먹했던 감정이 사라지고 친구처럼 친해진다.

해운대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다
이름 모를 갈매기와 눈 맞추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파도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힘이 솟는다.

세 걸음씩 네 걸음씩 시조와 놀자
시조는 평시조이면서 단시조의 경우 3장6구 초·중·종장 석줄 45자 내외의 정형률 안에 글을 녹여내면 된다. 두 개 이상의 평시조가 하나의 제목으로 엮어지면 연시조라 한다. 조선 시대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단수 12개가 합쳐진 연시조의 예다.

평시조의 틀을 벗어난 자수가 10자 이상 늘어난 시조를 사설시조라고 한다. 사설시조는 길어서 내용을 많이 담을 수 있다. 단시조에 단아한 내용이 많다면 사설시조에는 욕설과 음담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한다. 해학과 풍자가 많은 사설시조는 읽고 나면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이 많다.

일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잊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노동요라고 하는데 예전엔 농가에서 보리타작할 때 일정한 율동을 말로 되풀이하면서 손발을 맞춰 부르기도 했다. 시조는 세 걸음씩 네 걸음씩 걸으면서 운동하듯 노래하듯 불러도 좋다. 밭에 씨를 뿌리거나 김을 매다 힘들 때 한 소절씩 좋아하는 시조를 외워서 불러도 기분이 전환되고 좋을 듯싶다.

글에 소질이 있는 분이라면 생활 주변의 쉬운 소재부터 시작해서 시조를 써보고 갈고 닦아서 중앙일보에서 매월 뽑는 시조 지상 백일장에 도전해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부산 시조 시인들이 올해 상반기에 만든 시조집 <부산 시조>에서 알기 쉬운 시조를 골라봤다.

인간사 궁금하여 월세 든 두엄자리/한 짐 진 빚더미에 노새마냥 휘인 등/위로가 되지 못하는 하얀 낱말 수백 개 <개망초> 설상수 시인

욕심쟁이 형에게 한 입 크게 베어물린/ 막둥이 울보대장 숨겨 먹던 보리개떡/눈자위 꺼뭇꺼뭇한 어린 날의 멍 자국 <어떤 풍경 6 –개기 일식> 손증호 시인

이번 세미나에는 부산 시조시인들이 타지역에서 온 시인들을 훈훈하게 맞아줬다. 자갈치시장에 못가는 아쉬움을 달래듯 저녁식사 때는 테이블마다 싱싱한 회를 떠다 대접했다. 한 시인은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자두를 가져왔고, 수박과 떡을 준비해서 행선지를 이동할 때 버스에서 혹은 식당에서 식후 디저트로 먹는 즐거움을 듬뿍 선사했다.

▲ 해운대 밤풍경

해운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1박2일 행사라서 해운대의 야경과 낭만을 맛볼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숨고 달이 뜬 해운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긴 백사장을 따라 걸으면 파도가 음악을 들려준다. 현악기로 때론 피아노 음으로 고저장단을 반복하며 나그네의 가슴을 적셔준다.

해변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거니는 사람, 폭죽놀이 하는 사람들, 기타를 치며 한여름 밤을 수놓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왁자한 젊은이들. 가까이에 고층 아파트와 마천루 같은 빌딩들의 조명과 어우러져 해운대의 밤은 이국적이며 깊고 푸르다.

이튿날엔 감천문화마을에 갔다. 이 마을은 한국전쟁 때 부산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마을에는 빼곡한 집들이 밀집돼 있다. 기존의 마을을 보존하면서 재생의 생활친화적인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좁다란 언덕 골목에 벽화가 많다. 포토존으로 형성된 어린왕자 조형물 앞에 서 있어도 아픔이 담겨있는 동네라서인지 환한 웃음이 안 나온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따라 돌아봤는데, 관광객이 몰리면서 상업적 관광지로 변모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준다.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살아있는 역사다.

부산은 태종대, 해운대, 동백섬, 감천문화마을, 용두산 공원,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깡통시장, 해동 용궁사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이자 무역항으로 상징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음에 부산에 가면 아기자기한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는 이기대 해안 산책로(이기대 공원~오륙도 스카이워크) 코스를 꼭 걸어보고 싶다.

▲ 감천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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