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한국은 빠른 산업화에 성공해 국민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 됐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소득에 걸맞은 행복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성장에 맞는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이 같은 불행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당면한 한국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는 연구에 열중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를 만나 그 원인을 들어봤다.

“신뢰가 있는 공동체 규칙 하에
민주성을 높이는 사회로 가야
품격이 높은 사회가 됩니다

GDP·국방력으로 측정 못하는
나라 가치는 선진국 척도인 ‘사회품격’

이재열 교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품격’의 부재에 있다며 사회품격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됨됨이를 알 수 있지요. 그 됨됨이를 ‘인품’이라 칭하듯 사회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GDP처럼 화폐가치로 환산해 측정할 수도 없고, 또한 경제력이나 국방력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나라가 보여주는 가치가 바로 ‘사회품격’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프는 쉽게 따르기 힘든 매력을 지닌 문화수준 같은 것을 ‘소프트파워’라고 했어요. 사회학자로 과학기술처장관을 역임한 김진현 장관은 경제적인 선진화에 앞서 사회 조직원 간 배려와 관용, 평등 등의 선(善)인프라가 잘 결합된 것을 ‘사회품격’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이 교수는 품격이 높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격이 있는 사회란 서로 소통과 감정교류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정이나 정부시스템의 긴장과 균형이 깨질 때에는 국민이 강력한 경고로 질서를 잡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사회구성원 간 응집성과 규율, 소속감으로 큰 유대력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개인들은 창의적이면서 경쟁과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응집성이 없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해선 안 됩니다. 의기투합해서 공통된 목표와 규칙을 가진 신화가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바람직한 사회품격을 갖추려면 어떤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이 교수는 설명했다.
“첫째, 국민을 굶지 않게 해야 하고 최소한의 복지시스템도 있어야 합니다. 둘째,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본인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요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남녀간, 인종·종교간 차별이 일어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는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호소하고 풀 수 있는 채널과 개인의 역량을 빨리 개발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네 번째는 응집력입니다.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규칙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신뢰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이런 시스템을 갖춰야 국민 간 응집력이 커지고 균형이 조성돼 사회품격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의 사회품격, OECD국가 중 하위권
사회품격 핵심동력은 주인의식에서…

경제성장을 따르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품격 실상을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사회발전연구소에서 10여년 가까이 다른 기관과 공동연구를 수행해 사회품격을 구체적인 수치로 측정하고 이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어요. 그 결과, 당시 OECD 30개국 중 우리나라는 28위의 부끄러운 수준이었어요.

한국은 2000년대 초반 2만 불을 돌파했는데, 독일과 영국은 1990년대, 북유럽국가들은 1980년대에 그 수준을 통과했어요. 당시 이들 나라는 우리보다 사회보장과 투명성, 투표율도 높아 사회품격을 갖춘 선진국이 된 겁니다. 사회품격을 높이는 핵심동력은 ‘주인의식’이라고 봅니다. 30~40년이란 짧은 시간에 안에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높은 성공탑을 세웠는데, 지금은 그 탑에 그늘이 지는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그늘을 걷어내는 일은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문제를 공유하고 공감을 갖고 풀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신뢰, 배려, 공정, 투명성 등 사회품격을 높이는 요소들을 다 모아 투표로 반영하고 국가적인 의제로 내세워 품격 높은 선진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사회자본’이라고 합니다.”

투표에 적극 참여해 혁신 이끌어야
“월드뱅크는 ‘가난한 나라의 부는 천연자원에서, 개발도상국은 휴먼캐피털(인적자원)에서, 선진국은 사회자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의회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합니다. 국민들은 이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라고 냉소하며 투표를 포기하곤 하는데, 이러면 나라를 제대로 혁신할 수 없습니다.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노사·세대·지역갈등의 병폐가 심한데, 이 교수는 갈등을 다음과 같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없앨 수는 없어요.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인큐베이터에서 애를 키우는 것과 같은 겁니다. 현실적으론 아이를 그렇게 키울 순 없습니다. 논두렁에서 부모가 일하느라 아이를 눕혀놓으면 아이가 흙을 집어먹고도 잘 큽니다.
우리사회에 갈등소지가 많다고 하는데, 남미나 동남아의 지니계수(소득분배 불평등도 수치)는 0.6이고 우리나라는 0.3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스위스나 캐나다에선 언어권 다툼이, 북아일랜드와 중동국가는 답이 없는 종교갈등으로 전쟁까지 일어나잖아요. 다만 우린 오랜 이념전쟁으로 인한 좌우 이념갈등이 오래 가는 게 문제죠.”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가치 찾는데 주력해야
이 교수는 현재의 이익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미래의 공통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 집중토의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단이나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자들 간 대화보다 차세대 젊은 지도자들에게 권한을 줘 이들이 참신하고 건전한 사고를 펼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화의 자리에는 극단 좌우분자와 극렬인사를 배제해야 합니다.”

이어 이 교수는 바람직한 사회품격 모델을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새 세상을 만들려고 국민들이 새롭고 참신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차별받지 않고 자기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고, 중요한 공동체문제를 결정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겠지요. 그리고 신뢰가 담보된 공동체 규칙 하에서 민주성을 높이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어야 품격 높은 사회가 되겠죠.”
끝으로 이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본인의 노력으론 바꿀 수 없는 일엔 평온으로 대하고 바꿀 수 있는 일엔 적극 참여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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