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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어떻게 무더위 이겨냈을까?■ 여름특집
이명애 기자  |  love8798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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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9  14: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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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부채, 죽부인 등 여름 피서용품이 가득한 양반집 사랑채 전경

더위 피해 새벽부터 농사일…등토시와 죽부인 등 피서용품 애용

지금은 여름나기 필수품으로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보내던 선조들의 여름용품과 이야기를 담은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상설전시로 마련한 선조들의 여름의 일상을 담은 ‘한국인의 하루, 여름’편을 오창현 학예연구사의 안내로 둘러보며 선조들의 지혜를 엿봤다.

여름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우리 조상들은 미리 음력 정월 대보름부터 ‘더위 팔기’ 풍습으로 더위를 쫓아내려 했다. 농경사회인 조선시대에 바깥 일이 많았던 서민들에게 더위는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더 일찍 하루 농사일을 시작했다.

농가의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달려있느니 반드시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먼저 일을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유중림(1705~1771))

   
▲ 여름밥상. 양식이 부족한 춘궁기를 지나 여름이 오면 농가에선 수확한 보리로 넉넉하게 보리밥을 지을 수 있었다. 보리밥과 함께 소금에 절인 밴댕이를 상추에 싸먹으며 더위에 지친 몸을 보신했다.

신분에 따라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달랐던 조선시대에 양반들은 사랑채에서 여름용품을 준비해 시원하게 보냈다. 대나무로 만든 시원한 발과, 등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등거리와 토시, 죽부인 등 다양한 여름나기 소품들이 그것이다. 사랑방에 돗자리를 깔고, 대나무나 왕골로 만든 차가운 감촉의 죽부인을 옆에 끼고, 삼베 옷 속에 옷감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하는 등거리와 토시를 걸쳐 바람이 솔솔 통하게 했다. 또 부채를 이용해 햇볕을 가리고 바람을 만들어 더위를 식혔다.

특히 죽부인은 요즘도 여름철에 애용되고 있다. 죽부인을 안고 자면 대나무의 차가운 감촉과 죽부인 공간을 지나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이 땀이 나거나 끈적이는 것을 방지해준 조상의 지혜가 깃든 물건이다. 등거리와 토시도 자연의 바람이 몸에 전해질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다. 등토시는 등나무 덩굴을 윗옷 모양처럼 만들어 적삼 밑에 입었던 여름나기 필수품으로 애용됐다.

앞 냇가에 물이 줄어드니 물고기를 잡아보세. 해는 길고 한참 바람이 불다 멈추니 오늘 놀이 잘 되겠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촘촘한 그물을 둘러치고 모양이 좋고 큰 물고기 후려내어, 넓은 바위에 작은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이 맛과 바꿀소냐. (농가월령가, 정학유(1786~1855))

뜨거운 날씨의 여름에는 농사일도 잠시 쉬어갔다. 한낮의 불볕더위를 피하려 가까운 계곡에 들어가 통발로 물고기를 잡으며 더위를 식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위를 피하는 조상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농가생활과 농사준비를 보여주는 전시코너에서는 밭을 갈 때 소가 끄는 극젱이가 전시됐다.  막 자란 콩잎을 먹지 못하게 소의 입에 씌우는 소입망 등 여름철의 독특한 밭농사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또 여름의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였던 모시짜기 관련 도구인 모시칼, 전짓다리, 날틀 등의 전시로 선조들이 여름철 농사 외의 가내수공업 일거리를 볼 수 있게 했다.

   
▲ 도롱이와 삿갓

여름에는 무더위와 함께 비가 내리는 날도 많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인 두레를 중심으로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삿갓과 도롱이는 들에 나가 김을 맬 때 두레의 우두머리격인 영좌를 위해 나이 어린 일꾼이 들고 나가 입혀줬다. 삿갓은 비가 올 때뿐만 아니라 햇빛을 가리는데도 유용했다. 도롱이는 풀의 줄거리를 늘어뜨려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힘든 일이 끝나면 영좌가 마을사람들을 음식과 술로 대접했다. 이를 통해 힘든 노동, 술, 노래, 공동체 의례가 어우러진 여름철 농촌의 하루를 느낄 수 있다.

덥고 비가 와도, 무사히 두레로 함께 김매기를 마치고 서로 술 한잔 기울이며 위안을 삼는 선조들의 마음엔 잠시 이 무더위를 참고 견디면 또 시원한 바람이 부는 황금 들녘이 찾아오리란 기대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 미니인터뷰 - 국립민속박물관 오창현 학예연구사

“선조들의 여름나기 용품엔 당시 사회상이 담겼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서민들은 무더위를 피해가며 농사일을 해야 했지만 양반들은 사랑채에서 여유롭게 여름 무더위를 피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선조들의 여름나기 전시는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남쪽 지방에서만 생산되던 대나무로 만든 부채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란 뜻을 담은 선물로 많이 사용됐고, 어느 양반가로부터 받은 부채를 갖고 있느냐는 그 집안의 권세와도 통했다. 즉 여름용품인 부채가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는 논농사를 중요시 여겼다고 알려져 있지만 밭농사에 쓰이는 도구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밭농사도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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