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활속 발명이야기-글 왕연중·그림 김민재

생산과 판매 모두 부동의 1위
국내의약품 생산과 판매 모두 부동의 1위인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발매 초부터 유명 인사를 등장시킨 CM송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며 기적적인 신화를 창출해 냈다. 동아제약은 일제의 조선인 말살정치가 한창인 1932년 무렵 한국인으로서는 웬만한 거상이 아니면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내세울 수 없었던 시기에 ‘강중희 상점’이란 상호를 내걸고 위생재료를 취급했던 ‘동호 강중희’선생에 의해 창업됐다.

해방 후 강중희 선생은 상호를 넓게 퍼지라는 ‘동아(東亞)’란 이름을 붙여 동아약품공사로 바꿨으나 얼마안가 밀려드는 구호의약품과 밀수약품으로 도매업을 청산하고 제약업으로 전환했다. 이때 생산한 소화제 ‘생명수’는 ‘감기신약’, ‘쾌부’, ‘피부파스타’와 함께 동아약품이 제약회사로 재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1949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동아는 명실상부한 제약회사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강중희 상점’으로 약업의 길에 들어선지 만 17년 만에 현대적인 제약기업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동아제약은 6·25전란 중 부산 피난지에서도 생명수 등의 생산 활동을 계속하며 휴전이 가까워지자 완전 파괴된 서울에 올라왔다. 다행히도 중학동에 있었던 사옥은 외상을 입지 않아 생산설비를 새로 갖추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동아제약은 1958년 용두동 2700평의 대지에 항생제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강 중희 사장은 ICA 1차원조자금중 8만 달러를 배정받아 항생물질 소분제제기와 연고충전기 등 기계설비와 항생제원료를 독일과 미국에서 발주해 오일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등의 항생제를 본격 생산해냈다.

간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61년 첫 발매
이듬해 강중희 사장의 장남인 강신호 상무(현, 회장)가 독일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상무로 취임하면서 동아는 새 전기를 마련해 나갔다.
‘박카스-D’는 강신호 회장에 의해 발명됐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주신의 이름을 딴 박카스는 처음 종합간건강영양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제로 생산돼 간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61년 첫 발매됐다.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추어 간장보호에 중점을 뒀다. 그러다가 대중적인 차원에서 피로회복 또는 활력을 주는 것으로 소구점을 바꾸고 또한 제형도 앰플 내복 액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앰플형 내복 액은 주사용 앰플과 비슷해 무지한 사람들이 주사를 한다거나 운반도중 훼손율이 높아 문제가 많았다. 강신호 상무를 비롯한 간부들은 과감히 용기 교체를 결정한 후 은행에서 1억 원의 융자금을 받아 1963년 드링크 타입의 박카스-D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동아제약은 침체국면을 벗어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재정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있는 상황에서 발매된 박카스는 국내 약업시장을 휩쓸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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