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방치해 뒀던 서재를 정리하다 빛바랜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살다 노년에 자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어른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장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며 반가움과 마음 한구석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중학생 2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반미감정이 고조돼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미국 언론에 미군철수 등 반미감정을 담은 한국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포의 위상이 실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80세를 바라보는 교포어른은 6.25 전쟁당시 6년간 해병대에 근무하면서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 오늘의 번영된 한국을 이룩한 산업화의 역군이었다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전쟁당시 이국땅에서 한국을 지키다 죽어간 미군 해병전우의 얼굴을 떠올리면 오늘의 한국현실에 피가 역류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전쟁 당시 우방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린 북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지옥같은 생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17년 전 미국 워싱턴의 한 식당에서 고국소식을 묻는 교포어른과의 우연한 만남과 작은 인연으로 한동안 편지를 나눈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최근 북한의 핵 보유 등 국가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이때 전쟁의 참혹함과 국가안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전후세대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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