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00)

이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소울 푸드(Soul Food)’란 말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음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미국 흑인 특유의 음식’이란 뜻으로 쓰인다.
15세기 이후,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재배해 먹던 작물들이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미국대륙으로 전파됐고, 이것들은 흑인노예들의 주식이 됐다. 말하자면, 머나먼 미국땅으로 팔려온 흑인노예들에게는 눈물젖은 ‘엄마의 손맛’ 같은 고향음식이었던 셈이다.

음식에 ‘영혼’이란 뜻의 ‘소울(Soul)’이 붙은 건 1960년대부터 유행하던 미국 흑인들 문화, 특히 ‘소울 뮤직(Soul Music)’과 춤에서 비롯됐다. 주방이 있는 집이 없어 밖에서 조리해 먹던데서 유래한 바비큐, 메기튀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 허쉬퍼피, 고구마, 쌀·새우·게·굴의 뒤범벅 볶음밥인 잠발라이아 등이 대표적인 ‘흑인들의 소울 푸드’ 들이다.

여러 해 전에 미국 씨엔엔(CNN)방송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소울 푸드 40가지’를 조사해 순위를 매겨 소개한 적이 있다.
CNN은, ‘한국인들은 이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부제를 달았다.
1위는 예상 밖에도 선지국·뼈해장국·설렁탕·콩나물국을 다 아우르는 해장국 이었다. CNN은, “해장국은 숙취해소를 도와주고 두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신기한 기능을 가진 가장 인기있는 수프”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 다음 2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 식탁의 대표 전통음식인 김치. 3위는 순두부찌개다. 순두부찌개는 고전적이면서도 예상치 못한 맛을 자아내는 스튜라고 평했다.

4위는 한국인의 ‘국민회식 메뉴’인 돼지고기 삼겹살, 5위는 중국에서 건너온 ‘블랙푸드’ 자장면, 6위는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모니 음식인 ‘치맥(치킨+맥주)’, 그리고 라면(7위), 간장게장(10위), 김밥(25위), 뻥튀기(38위), 팥빙수(40위) 등의 순이었다. 이 음식들과 순위 선정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또, 최근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현지로케이션 프로 <현지에서 먹힐까ㅡ미국 편>을 보면, 길거리 밥차 지붕에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는 ‘KOREAN SOUL FOOD’(코리안 소울 푸드) 사인 등 간판을 볼 수 있다. 이것 만을 보면, 외국사람들은 ‘아, 이곳에서 한국음식, 그것도 영혼의 음식을 파는구나’하고 생각할 것인데… 정작 그날 그날 준비되는 음식들은 거의가 아예 중국음식이거나 중국음식이 바탕이 된 음식들이다. 이를테면, 짬짜면(자장면+짬뽕), 해물덮밥,(기름에 튀긴 군만두인) 갈비만두, 삼겹살덮밥, 떡갈비 버거… 등등 순수 한국음식과는 거리가 있다.

알고보니 이 밥차의 총주방장으로 내세운 이가 중국음식 전문 유명셰프출신 이기 때문이었던 것. 그렇다면 단순히 세간의 유행따라 ‘흑인 영혼의 음식’이란 뜻의 ‘소울’을 내걸게 아니라, ‘마음의 위안을 주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이란 뜻의 ‘KOREAN COMFORT FOOD’(코리안 컴퍼트 푸드)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예능프로의 성격이 짙어 재미위주로 보면 된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너무 가볍다. 오로지 시청률에만 함몰돼 있는 설익은 치기를 보는 것만 같아 왠지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