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말도 잘 안통하고
말 전달도 힘들지만
함께 먹고 웃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소중한 추억이 된다"

tvN에서 금요일 밤에 방영하던 ‘스페인 하숙’이 열흘간 영업을 하고 방영이 종료됐다. 이제 뭔가 좀 알듯한데 끝이 나서 아쉽다. 유해진씨가 침대보를 빨아 한국식 뒷마당 빨랫줄에 동네 아줌마처럼 탈탈 털어 줄줄이 너는 것이나, 어리바리해 보이는 배정남씨가 짧은 스페인어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나, 몇 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할지 또 메뉴를 고민하는 차승원씨나, 손님이 들어오지 않아서 광장이나 마을입구까지 어슬렁대며 망을 보는 일이나, 이게 뭐하는 이야길까 그저 밋밋하고 심심했다. 그렇다고 그곳이 스페인의 특별히 볼만한 경치가 있는 곳도 아니고, 하숙 건물이나 내부가 예쁜 것도 아니고, 오래되고 낡은 수도원같은 허름한 곳에서 뭘 보여주려나?

새로운 프로그램에 적응하는데 꽤 걸렸다. 10회 방영 중 절반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뭔가 조금씩 룰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오가 지나서 오후에나 손님이 든다는 것, 남녀노소 모두 혼자 숙소를 찾아온다는 것,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신발을 벗고 발 마사지를 하고 몹시 피곤하고 지쳐서 표정이 없어 보이는 것, 그리고 한국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가톨릭의 3대 성지는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스페인:산티아고)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프랑스 주교가 처음으로 순례의 길을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것이 915년이었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천년을 이어오는 순례길이 됐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800㎞ 순례길을 완주하려면 한 달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쉬고 자고 먹을 곳이 필요하기에 순례자만을 위해 출발 시 스페인관광청에서 발급하는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을 발급받아 멀고먼 길을 갈 때 순례자들을 위해 저렴하게 숙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순례 노정에서 백 군데가 넘는 알베르게를 거치며 순례자여권에 도장을 받아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이르러 드디어 순례완주 증서를 받게 된다.

‘스페인 하숙’에 갈수록 찾는 이가 많아져서 열흘간 38명의 순례자가 찾았고 그중 21명이 한국인이었다. 보통의 알베르게는 밥도 안 해주고 숙소도 깨끗지 못하다는데, 스페인 하숙에 묵은 순례객이 남긴 ‘꿈에 그리던 집밥을 따뜻하게 맘껏 먹을 수 있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는 쪽지를 보는 우리조차도 흐뭇하고 가슴이 따뜻했다.

하루에 20~30㎞를 매일 걸어내야 하는 순례길, 각기 다른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며 길을 걷는 사람들, 너무 빠르게도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요구와 법칙을 존중하며 걸어가길, 함께 걸어도 각자의 속도대로 걸을 것이며, 길 자체를 그저 걷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재촉하지도 무리하지도 않기, 자기 몸이 이겨낼 수 있는 데까지만 감당하기, 누군가의 말에 ‘자기돈 내고 개고생하기’로 자신을 훈련하는 길, 길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한 날 고양이 한 마리도 보지 못한 지루한 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함께 걷던 친구와 만나면 국적 가리지 않고 얼싸안고 반가워하고, 말도 잘 안통하고 하고픈 말 전달도 힘들지만 함께 먹고 웃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소중한 추억이 된다고.

인생도 한평생 순례의 길이 아닐까?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러하듯 인생길도 똑 같다는 생각이다. 힘들어도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그리고 반드시 끝이 있다는 그리고 그 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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