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59)

"초록색을 인위적으로
만들 때 생명을 할퀴는
공포물이 됐다"

원래 초록은 갈매(짙은 초록빛이며 팥알만 한 갈매나무의 열매) 또는 갈매색이라 했다. ‘푸르다’는 말도 ‘프르다’의 어원인 ‘플(풀)’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우세하고, 일반적으로 파란색과 혼용하는 일이 잦다.
초록색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으로 또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풀색, 나뭇잎색이다 보니 자연과 환경 보호, 생명력을 의미하고, 안식, 안정, 평화, 휴식 등도 상징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초록을 신성시해 그들이 숭배하는 신에게 초록색 옷을 입히고 초록이 영원히 인간을 돌봐주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그들 나라의 국기에도 대부분 녹색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록을 악마의 색깔이라 여겨 성당 성화에 악마를 초록으로 그리기도 했고, 셰익스피어의 시에서 ‘질투는 초록색 눈을 갖고 있다’라든가, 영어권에서는 ‘질투의 그린(green with envy)’이라는 말도 쓴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초록색의 카멜레온을 보면 저주를 받아 병에 걸리거나 죽는 것으로 믿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녹색 모자가 ‘아내는 바람이 났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있는 바보’라는 뜻이 된다고도 한다.

어찌 됐든 인간들은 오랫동안 자연의 초록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려 애썼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초록염료는 포도주 찌꺼기와 구리를 섞어서 얻은 녹청이었다. 물론 매우 귀하고 비쌌다. 부자들만이 돈 많이 벌고 아이 많이 낳으라며 녹색 드레스를 입혔다. 그러나 이 초록은 아름다웠지만 시간이 가면 변했다. 때문에 만들기 어렵고 곧 변하는 초록은 더 귀해져 신성한 색이 됐다.
요행히(?) 18세기 말 스웨덴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비소’를 실험하다 우연히 아름다운 그린을 발견했다. 이것은 색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근사한 색에 들어간 비소의 독성 때문에 셸레그린을 사용한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 나폴레옹도 카펫과 가구, 벽지 등에 이 ‘아름다운 그린’을 애용하다가 만성적 비소중독으로 죽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다.

초록을 축복의 색으로 여기던 영국에서는 그 색깔로 꾸며진 빅토리아 여왕의 별장에서 일하던 왕실 화가가 죽기도 했다. 1898년 퀴리 부인이 발견한 라듐의 ‘초록색 공포’도 문제가 됐다. 어둠 속에서도 초록빛을 발산하는 라듐을 예뻐진다고 생각해 로션으로, 또는 손톱과 입술에 바르고 심지어 감기약에까지 섞어 넣었다. 미국의 한 시계공장에서는 야광 시계를 만들던 50여 명의 여공들이 암으로 죽었고, 퀴리부인도 결국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초록색에 대한 갈증은 1856년 보라색의 첫 인공염료가 만들어지고, 독일과 영국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로 염료와 염색법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인체유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연에서 저리도 아름다운 초록색을 인위적으로 만들려할 때 생명을 할퀴는 공포물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 교훈일까.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라면 한 뼘의 땅에라도 초록의 식물을 심어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만끽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