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58)

"옷에서 주름은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들어준다"

옷에서 주름은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들어주고, 몸을 편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옷감과 주름의 종류에 따라서는 정갈하고 품위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때문에 주름은 일찌감치 패션의 반열에 자리를 잡았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주름을 많이 활용했다. 주름잡는 방법도 다양했다. 가로, 세로 주름뿐 아니라 방사선으로 주름을 잡아 아름다움을 극대화했고, 권위와 신분까지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주름은 멋의 통로였다. 그들의 주된 옷감은 리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주름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해냈다. ‘풀’을 먹이고 그것들을 꼬옥 쥐어 짠 상태로 말려 쪼글쪼글한 주름을 만들어 멋을 부렸다.

대체적으로 ‘주름잡는 일’은 힘들었다. 1950년대만 해도 주름은 멋과 정갈함의 상징이었지만 주름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바지 주름을 칼날같이 세우려고 따끈한 방바닥에 바지를 눕힌 뒤, 그 위에 책들을 깔고 선잠을 자던 세월도 있었다. 그나마 그 바지가 모직일 때만 가능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쏟아 주름을 세웠어도 다음날 비를 맞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주름에 혁명이 온 것은 합성섬유의 등장 덕분이었다. 열가소성이 있는 합성섬유에 주름을 잡아 열로 눌러주면 비를 맞아도, 물에 빨아도 그 주름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신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바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라는 일본의 디자이너였다.
1938년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파리의상조합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뒤, 파리와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몇 년 기량을 익혔다. 귀국해 197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옷은 인간의 일부이지만, 옷이 몸을 구속한다’고 생각해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돌출구가 바로 주름이었다. 주름을 이용해 몸에 밀착하면서도 동작을 전혀 구속하지 않는 옷을 개발했다. 주름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구성으로 아름다움과 인체를 해방시키는 쾌거였다.

옷을 비롯해 머플러, 모자, 가방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주름을 썼다. 옷감의 재료, 색, 디자인에 따라 기기묘묘하면서 편리한 옷들을 쏟아냈다.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합성섬유들이 만들어낸 주름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물론 비를 맞아도, 물속에 넣고 북북 빨아도 주름이 그대로 살아있고 물에서 건져내면 바로 마르고 가볍기까지 해 여행 필수품이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요술쟁이 같은 옷이었다. 합성섬유의 시대를 재대로 파악하고 그 특성을 기가 막히게 옷의 디자인에 접목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염치없을 정도로 카피해댔다. 세계 패션 시장에서도 이 주름옷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 봄, 얇고 투명해 보이는 아름다운 주름들이 여심을 내 보이듯 거리에 일렁이고 있다. 우리 것인지 이세이 미야케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흐려진지 오래다. 이쯤해서 우리 패션계에도 그 같은 디자이너가 등장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