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 노인자살 예방책은...

▲ 강원도 양양 강찬규‧김민자 부부 농가에 농약안전보관함이 설치돼 농약을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을이장, 생명지킴이로 주민과 소통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원인으로 60~80대 노인 자살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에는 고령의 주민이 많고, 농약을 쉽게 접하기 때문에 농약음독으로 인한 자살이 많다.

생명보험사의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재단)은 지난 2011년부터 농약안전보관함을 농가에 보급하면서 농촌주민의 자살을 예방하고 있다.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사업을 통해 재단은 2011년부터 8년간 91개 시군 총2만6900여 개 가구에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했으며 2011년 16.2%(2580명)에 이르던 농약음독자살사망자 수를 2017년 6.7%(834명)까지 줄이는 데 기여했다.

농약안전보관함은 농약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보관함이자 ‘생명지킴이’로 임명된 마을 이장이 두 달에 한 번씩 농가를 방문하고 농약을 관리‧감독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게 된다. 농약안전보관함을 열려면 잠금장치를 풀어야 되고, 내부에 거울과 가족사진을 부착해 자살시도자를 회유한다.

지난달 29일 강원도 양양 조산리마을회관에서 조산리, 홍천리, 상평리, 사교리, 어성전2리, 북분리 6개 마을 313개 농가에 농약안전보관함을 전달하는 생명지킴이 임명식이 열렸다.

이날 보급에 앞서 양양군 보건소에서 각 마을 이장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와 생명지킴이 양성교육을 실시했으며, 생명지킴이 임명식을 갖고 마을 이장 6명을 ‘생명지킴이’로 위촉했다. 행사 뒤풀이로 6개 마을 이장들이 모인 다과회에서 농촌 자살문제는 주요한 화두가 됐다.

“옛날부터 농촌 자살문제는 심각했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정신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농약안전보관함의 보안장치를 열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순간적인 감정을 농약안전보관함이 막아줄 거라고 봐요.”

조산리 최항규 이장은 “이상하게도 농약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주민은 살려놔도 또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며 “농약안전보관함이 마을에 들어오니까 주민들의 의식이 달라져서 좋다”고 말했다.

다른 이장은 농약안전보관함이 농촌마을에 많이 보급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농약안전보관함을 부러워하는 주민이 많습니다. 양양의 124개 마을 중에 6개 마을만 농약안전보관함이 보급됐어요. 안된 곳이 많아서 해당되지 못한 주민들이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해달라는 원성이 자자합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조경연 상임이사는 “농약안전보관함은 가장 절실히 필요하고 고립된 마을에 우선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장이 주기적으로 농가를 방문하면서 주민과 사회관계망이 생기고, 위험해 보이는 이웃을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며 “재단에서는 불안정한 주민에게 1인 100만 원까지 심리치료비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조 상임이사는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노인자살예방사업에 관심 갖고 민간단체와 적극 협력해 생명지킴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산리 마을의 강찬규‧김민자 부부는 7000㎡(2000평) 농지에 복합농을 하면서 농약안전보관함을 들여놓게 됐다.

김민자씨는 “보관함에 농약을 정리하기 위해 흩어져 있던 농약을 모았는데, 여기저기 사방에서 농약이 나왔다”며 “일단 농약을 보관함에 넣으니까 농약 이름표가 지워질까봐 염려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반겼다.

▲ 지난달 29일 강원도 양양 생명지킴이 임명식에 참석한 6개 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에 의지를 다졌다.

▲ 국회에서는 지난달 30일 ‘봄철 자살 급증,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주제로 관‧학‧연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정책세미나를 가졌다.

봄철 자살률 높은데 정부 자살예방사업은 공백
연세 많은 어르신일수록 집안 고립으로 불안정

민간단체인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농촌마을에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하는 동안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자살문제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국회에서는 지난달 30일 주승용‧원혜영 의원(국회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 주최로 ‘봄철 자살 급증,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해 관‧학‧연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 전홍진 센터장

주제발표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 전홍진 센터장은 “자살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을수록 자살 위험이 높다”며 “특히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을수록 집안에 고립되는데, '집에서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 자녀를 키우던 시절 등 옛날생각만 떠올린다고 조사됐다”고 말했다.

전 센터장은 “통계청의 2017년 월별 자살현황을 보면 3~5월 봄철에 자살률이 높으며 1월과 비교했을 때 200명 이상 차이났다”며 “자살이 계절적 변동을 가지는 이유는 햇볕의 증가와 관련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적으로 햇볕을 받으면 뇌가 자극돼 기분이 좋아지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감정기복을 유발해 예민해지는 사람이 있다”며 “특히 여성에서 빛과 자살이 더 관련돼있다”고 말했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는 자살시도가 낮지만 일조량이 급격히 높아지는 봄철 감정기복에 의한 자살시도가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예방방법으로 전 센터장은 “햇볕을 규칙적으로 쬐는 것이 봄철 자살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에서 연세대 송인한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자살은 햇볕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받는 압력이 높아지는 계절이 봄이다”라며 “많은 사람들이 봄에 희망을 갖지만 반대로 외로움이 증폭돼 절망감을 갖게 되는 계절이기도 해서, '낙오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자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자살은 복합적인 문제로서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제시했다.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장진원 사무총장도 송 교수의 제언에 동의했다.

장 사무총장은 “기초수급 심사가 봄철에 이뤄져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며 “봄철에 정부의 자살예방사업은 공백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봄이 오기 전인 연말부터 정부의 예산지원과 자살예방에 대한 정책이 이뤄져야한다”고 피력했다.

상대적으로 보건복지부 장영진 자살예방정책과장의 목소리는 작았다.

장 과장은 “보건복지부에서는 방문서비스를 통해 고립된 어르신들과 소통하고 있다”며 “방문을 통해 좀 더 세부적으로 어르신들의 우울증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 과장은 “3월부터 자살예방 복지사업을 시작하라는 의견에 공감하며, 복지수급을 봄철에 늘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일본이 ‘지난밤 안녕하셨습니까?’ 자살예방캠페인을 통해 불면증 뒤에 숨은 노인 자살을 예방한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우회적이지만 효과적인 캠페인을 실시해야 된다는 의견에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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