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흐드러진 벚꽃가지가
꽃 무게로 늘어져
강물에 그림자 드리우고…

소암리 산 중턱에 산을 깎아 몇 만평의 초지를 만들어 울타리를 치고 젖소를 방목하는 총무집은 같은 괴산이라도 우리 집에서 40분은 족히 걸리는 제법 먼 거리다. 남편 사진반 동호회인 정 총무가 이번에 아들 장가를 보내고 뒤풀이 겸 사진반 식구들을 목장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남은 옥수수 모종 두 골을 마저 심고 늦을까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산은 오색의 신록으로 부풀어 오르고, 무르익은 4월 열린 차창으로 훈훈한 바람에 꽃향기가 달려든다. 출발한 지 20분 만에 차는 괴산읍을 지나 소수면을 향해 길을 꺾어 들고 구불구불 작은 마을을 거쳐 개천을 끼고 직선 코스로 달린다. 길가에 어린잎이 나기 시작한 살구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고, 우리 집엔 이미 개나리 초록잎이 무성하고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붉게 피는데, 여기는 이제 봄꽃이 피기 시작을 한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소암지에 지금 벚꽃이 한창이란다. 점심 먹고 꽃사진 찍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가 사는 곳보다 봄이 더 늦나보다. 마을길을 벗어나 완만한 산길로 접어드니 좁다란 길은 새잎이 나기 시작한 키 큰 나무로 둘러싸여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오솔길 마냥 호젓하다. 마치 독일의 ‘로맨틱 가도’에서 만났던 나무 오솔길이 떠오를 만큼 아름답다.

상류를 향해 가면서 산중턱 계곡에 끝없이 펼쳐진 소암지가 우리의 시야를 사로잡는다. 남편 말이 설우산과 백마산에 둘러싸여 연 만수면적이 4만 평에 달하는 수려한 장관을 자랑하는 드넓은 계곡형 저수지라고. 계곡을 따라 길게 뻗은 지형에 저수지 이편과 건너편으로 벚꽃이 줄지어 만개했고, 몇 사람이 벌써 차를 대고 낚시를 하고 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소암지를 끼고 상류로 오르는 길은 마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를 연상시켰다. 소암지의 지류를 건너는 오랜 세월을 버텨온 듯 철제로 된 녹슨 다리조차 찾는 이를 반겨준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가지가 꽃 무게로 늘어져 강물에 닿을 듯 꽃 그림자를 드리우고 떨어진 꽃잎은 물결을 따라 하염없이 떠가는 풍경은 ‘동심초’ 한 자락을 절로 불러낸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한데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고 하는고
          
남편은 올 봄에 소암지로 밤낚시를 꼭 한 번 오겠노라 다짐을 한다. 소암지는 특이하게 산속 중턱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밤낚시를 하면 밤하늘에 별빛만 총총하다고. 낚시를 방해하는 다른 불빛이나 소음이 전혀 없다고.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다고.
오늘 이 봄을 사랑하고 오늘 곁에 있는 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이해인 씨의 시처럼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만끽하련다. 차는 천천히 비탈길을 올라 ‘알프스 목장’이란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돌 틈에 분홍빛 앵초꽃이 눈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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