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농업인 농지소유 예외 너무 광범위…제한 강화해야

▲ 2020년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기 위해 최소 175만2000ha의 농지가 필요하지만 지난 10년간 12만1000ha의 농지가 전용됐다. (출처:국회 입법조사처)

대법원 “상속농지, 비자경인의 처분의무 없어” 판결 논란
경자유전 원칙 폐기한 대만, 농지 1ha당 5억4000만원으로 폭등
농업회의소 상설화하면 농지유지 최후 보루 역할 가능

대법원 판결, 경자유전의 원칙 근간 흔들어
지난 2월 대법원은 ‘상속받은 농지는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해당 사건은 신모씨가 상속농지를 적법한 전용절차 없이 공장을 짓자 부산 강서구청은 농지법에 의거해 농지처분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것이었지만 대법원은 농사를 짓지 않는 상속인이 1만㎡를 적법하게 소유할 수 있으므로 농지처분 의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헌법 제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한 판결이었다. 이미 여의도 면적의 53배가 넘는 농지가 용도 전용으로 사라져 1975년 224만ha이던 전국 경지면적이 지난해 159.6만ha로 줄어들었다.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필요면적인 175.2만ha보다 적은 것이다.

지난 16일 농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사동천 교수는 “비농업인 상속은 경자의무가 없어 휴경을 이유로 처분을 명할 수 없다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의 논리”라며 “이 사건처럼 비농업인의 농지를 처분할 법적근거를 마련해야 경자유전의 원칙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의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충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사 교수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을 조화롭게 조율하려면 현행 농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 교수는 농지법 개정의 방향으로 “비자경(非自耕) 상속인, 이농자, 1996년 1월1일 이전 취득자 등 농업생산 이외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예외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므로 농지를 불법 전용한 경우 농지를 처분토록 하는 규정 등 농지소유의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며 “농업회사법인의 농지소유 요건 중 대표자인 농업인 제한을 폐지한 것과 비농업인이 주식의 90%까지 소유가 가능해져 의도적인 농지투기를 허용하는 규정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별공시지가의 30%로 정하면서 ㎡당 5만 원을 넘을 수 없도록 해 사실상 10~20%에 머무르고 있는 농지보전부담금을 현실화해 비농업인의 농지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산수단 확보하기 위해 농지법 개정해야
그렇다면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만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대만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기한 이후, 1ha당 농지가격이 5억4000만 원으로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약 10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비싸진 농지는 결국 식량안보를 중대히 위협할 수 있단 걸 대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만 명시돼 있고, 예외적 경우에만 임대차 등을 허용하고 있지만 하위법령에서 이 원칙을 유명무실케 하는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만연해 있다. 부동산을 최고의 자산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농지가 투기의 수단이 아닌 생산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방향으로 농지법이 개정돼야 하고, 대법원 판결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날 참석자들은 뜻을 함께 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 문석호 농지과장은 “경자유전 원칙을 저해하는 불법 농지 소유·임대차와 휴경 등을 근절키 위해 2017년부터 실태조사를 강화했고, 적발된 경우 1년 내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면서 “농촌의 고령화, 상속과 이농 증가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농지 소유와 이용제도 개편안의 용역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또한 문 과장은 “1ha 미만 상속농지는 임대 등으로 농업에 이용되도록 하고, 60세 이상 5년 이상 자경농업인의 부분임대 허용과 최소임대차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농지전용허가 면적을 3만~30만㎡로 상향하면서 농업진흥지역 밖 농지규제를 완화해 농지보전과 국토개발의 조화를 도모하겠다고 덧붙였다.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 감소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과 달리 국민농업포럼 정명채 상임대표는 농업회의소를 확대해 비농업인의 농지전용 등 농지를 감소시키는 최후 보루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정 대표는 “농지를 투기수단으로 악용하는 세력은 결집돼 있지만 이를 막아낼 농업인은 분산돼 있다”면서 “프랑스와 일본 등은 농업회의소를 통해 생산목적 이외의 농지이용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식량자급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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