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88)

일흔 네 번째 식목일이자 청명 절기였던 지난 5일, 그리고 그 하루 전인 4일 이틀간 강원도 산불로 산림 530헥타르(ha)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주택 235채가 불타고 학교는 휴업에 들어갔으며, 피해지역인 고성·속초, 강릉·동해지역엔 ‘국가 재난사태’가 선포됐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를 기록하게 된 이번 강원도 산불의 주범은 ‘바람’이었다. 산불이 나던 당일 최대 순간 풍속은 초속 25.6미터(시속 128km). 이 강풍을 타고 불길은 시속 5km의 속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TV생중계 장면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해마다 봄철 이맘때 쯤,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 부는 이 강풍을 양양과 간성, 혹은 양양과 강릉에 부는 국지적인 강풍이란 뜻으로 ‘양간지풍(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 부른다. 양양지방에서는 이 바람이 불을 몰고 온다 해 ‘화풍(火風)’이라고도 한다. 지난 2005년 양양의 오래된 절 낙산사를 전소시킨 대형산불도 바로 이 바람때문 이었다.

예부터 이 지역에 부는 바람을 또다른 이름인 ‘높새바람’이라고 했다. 늦은 봄과 초여름에 걸쳐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해양성기단인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동해까지 확장해 머물러 있다가 태백산맥 높은 산마루를 넘으면서 강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이때 강력한 중력풍이 강한 회오리바람과 열기둥을 만들며 공기가 단열압축돼 고온 건조한 강풍이 불게 되는데, 이를 ‘높새바람’이라고 불렀다. 기상학에서는 독일지역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으면서 기압의 변화로 부는 건조한 열풍인 ‘푄(Foehn Wind)현상’과 같은 기상현상으로 풀이한다. 즉 봄철이 되면 백두대간을 축으로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높새바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높새바람이 불면, 기온이 높아지고 대기가 건조해 진다. 그런 탓에 예부터 영서지방 농민들은 높새바람으로 인해 초목이 말라 죽으니 ‘녹새풍(綠塞風)’이라 했고, ‘동풍이 벼 말린다’ 해 곡식을 말려죽이는 바람이란 뜻으로 ‘살곡풍(殺穀風)’이라고도 했다.

이제 바람은 잦아들고 산불은 진화됐지만,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 자리마다 탄식의 눈물만 넘쳐난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강원도 산불 피해 복원지의 생태계 변화를 지난 20년간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산불이 난 후 개미는 13년, 조류는 19년, 야생동물은 35년, 경관과 식생은 20년, 토양은 무려 100년이 걸려야 복구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 그 울울창창 했던 숲과 숲, 산과 산들이, 나무와 새들이 저들 본래의 본래의 모습을 찾기란 요원한 꿈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나마 ‘환상적인 비전’만이 뜬구름처럼 떠다니는 이 혼탁하고 척박한 우리세상  속에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자랑스러운 자산이 이 ‘수려한 금수강산’이니까.…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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