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남 광양 ‘곳간영농조합’ 김장익 대표

▲ 김장익씨와 조카 그리고 부인 심은정씨

외할아버지·아버지로 이어온 정미소가 자부심과 위안
ROTC·물류회사 경험이 자연스럽게 귀농으로 이어져

귀농 6년 만에
논농사 8만평으로 4배 늘려

광양만은 전남지역 물류의 중심이다. 광양제철소 앞 항만이 컨테이너 지정항으로 건설되면서 국제 무역항의 기능도 크다. 광양만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서쪽 끝으로 해안의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노량진을 비롯한 임진왜란 전승 유적지가 많아 역사문화 관광지로도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 광양만을 지나 초남대교를 건너면 신대덕례배후단지경제자유구역이 펼쳐진다. 주변으로 넓은 평야와 맞은편의 봉화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어우러진 그곳에 해창 마을이 정갈하게 들어앉아있다. 들녘마다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들의 모습은 봄날 햇살만큼이나 정겹다.

김장익 대표(34·전남 광양읍 해광로 643·곳간영농조합)는 해창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 농부다. 지난 2013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귀농할 때만해도 마을주민 모두가 설마설마 했단다.
“제가 동네에서는 제일 젊은 청년이지요. 바로 위 선배가 9살 연상입니다. 젊은 만큼 기대가 크지만 걱정들도 많았겠지요. 어쨌든 지금은 동네서 일꾼으로 알아줍니다.”

김 대표는 논농사만으로도 영농혁신과 경제적 이익을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귀농해서 아버지 김형일씨(69)와 함께 논 6만6000㎡를 경작하기 시작해 매년 조금씩 늘린 것이 올해는 19만8000㎡(6만평)에 달한다. 특히 김 대표에게는 귀농을 결심하게 된 각별한 것이 있다. 외할아버에서 아버지로 이어진 아주 오래된 정미소다. 세풍정미소는 김 대표에게 정신적 지주이고 자부심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속에 농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선택할 때도 농사와 연관성이 높은 것을 찾았고, 또 운 좋게도 그런 곳에서 일을 했지요. 짧은 직장생활이었지만 지금의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광양이 고향이다. 고등학교와 대학만 잠시 순천으로 유학했다. 그리고 ROTC 학사장교로 제대 후 홈플러스 물류센터에서 4년의 직장생활을 거쳤다.
“유통회사를 다니는데 농사도 다를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지요. 아버지도 귀농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따라 농기계도 만지고 논에도 자주 들어가고 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김 대표의 본격적인 영농일기는 2016년 4월 결혼하면서 부터다. 아내 심은정씨(33)는 결혼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계속하고 있다.

“결혼은 저에게 있어서 진짜 귀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영농이 뒷전으로 밀리기도 많이 했는데 결혼 후에는 영농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요. 특히 수익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생산한 조곡을 정부 공공비축미와 농협 산물벼 수매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자체 가공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지역 농민의 생산성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자체 생산량 이외에 내년부터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조곡량 매입을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다.

“2015년께부터 지역내 작목반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광양주조공사와 계약재배를 통해 주조용 햅쌀(한아름2호)을 생산하고 판로개척 및 지역 내 쌀 소비량 증가를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죠.”
김 대표는 내년까지는 논농사도 26만4000㎡(8만평)으로 늘리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 생산되는 조곡량 매입도 100톤까지 늘리기 위해 모든 협의를 마친 상태다. 특히 현재 세풍정미소의 시설도 재정비해 시간당 생산량을 현재 2톤에서 3.6톤까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농업은 생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공과 판매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농업이 직업이 될 수 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창의적 발상이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네트워크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농사는 모든 것이 창의적, 즐겁고 행복한 작업
바쁜 일과 속에서도 김 대표는 각종 사회활동 참여도 빠지지 않는다. 광양시4-H회, 한국농업경영인광양시연합회 등 사회단체는 물론 지역과 자치단체에서 마련되는 각종 교육과정도 최대한 참여하고 있다.
“귀농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단어일 겁니다.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 특히 시골에서 유년을 보낸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 같습니다. 충분히 생각한 귀농이라면 미래의 또 다른 삶에 얼마든지 긍정적일 수 있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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