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전남 강진

▲ 백련사 동백림 부도

떨어지기엔 아까운 꽃들이
차가운 바닥에 혼절한 듯
처절하게 있다.
떨어진 모습까지 처연한 듯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동백꽃이 혼절한 듯 뚝뚝 떨어져 장관을 이루는 백련사 동백림을 올봄엔 꼭 걷고 싶었다. 마침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2019 춘계 학술대회’가 3월에 있어서 강진에 다녀왔다.
강진은 왼쪽에 해남, 오른쪽엔 장흥이, 남쪽엔 강진만 쪽빛 바다가 출렁이는 곳이다. 북쪽에 영암과 경계에 위치한 달빛 한 모금 머금고 선 월출산(月出山, 808m)은 단연코 강진의 명산이다. 고려청자 도요지가 있고 정약용의 유배지 다산초당이 있고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영랑(永郞, 1903~1950)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진만의 8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로 소의 멍에에 해당한다는 가우도(駕牛島)는 출렁다리가 생기면서 널리 알려져서 찾는 인파가 많다. 출렁다리를 건너 섬 해안선을 따라 걷기에 좋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영랑 시비

순수서정시를 만나는 영랑 생가
전국에서 시조시인 100명이 모인 강진군 시문학파 기념관에서는 지난달 16일 ‘영랑과 현구의 시세계와 한국의 정형시’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시문학파란 1930년대 창간한 《시문학》의 주요 시인인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김현구, 변영로, 이하윤, 신석정 등이 참여해 순수시 운동을 주도한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 정치색이나 사상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한 시문학파는 현대시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 한가운데 김영랑 시인이 있다. 김영랑 시의 특징은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음악성 있는 시어로 표현한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시인이다. 단 한 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는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전문) 김영랑-

이 시는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이 갈등을 반복한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다.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서정의 원리를 극대화 한 절창 시로 대중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시 중 하나다.
3월에 찾은 영랑생가에서 모란꽃은 볼 수 없었지만, 남쪽의 맑은 햇살을 받으며 안채, 문간채, 사랑채, 샘·동백나무, 생가 우물가, 곳곳을 둘러보고 곳곳에 세워진 그의 시비를 감상하며 영랑의 시심을 헤아려 보기에 좋았다.

▲ 시문학파 기념비

동백림을 걷다 저절로 감성충전
발길을 돌려 만덕산 동백림으로 향했다. 봄을 알리며 4월초까지 피고 지는 동백꽃. 동백 숲길을 걷다보니 싱싱한 꽃들, 떨어지기엔 아까운 꽃들이 차가운 바닥에 혼절한 듯 처절하게 있다. 떨어진 모습까지 처연한 듯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백련사로 이어진 동백림은 동백림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해도 좋고, 다산초당을 거쳐 백련사 경내를 돌아보고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내 키보다 서너 배가 되는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빼곡한 동백림을 걷다 보면 상념에 빠지고 시 한 수를 쓰고 싶어진다. 백련사 동백숲의 동백나무는 평균 높이가 7m쯤 되고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151호로 지정됐다. 일반 꽃은 시들면 떨어지는 데 비해서, 동백은 싱싱할 때 모가지가 부러지듯 땅에 낙하한다. 떨어진 뒤에도 쉽게 꽃잎이 무르지 않고 고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강진이 푸른빛을 띠는 것은 3청(靑), 다산 정약용의 푸른 정신, 고려청자, 강진만 푸른 바다가 있어서라는데, 여기에 붉은 동백꽃이 있어서 더 푸른 건 아닐까.

동백은 붉게 차오르고 강물은 거꾸로/ 흐르다 멈추고 잠깐/ 긴장을 푼다
백련사 동백꽃 황홀한 그 숲에 들면/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만 우둑우둑 모여든다/죽다의 반대편에서 꽃이 피고 다시 진다/산다의 맞은편에서 꽃모가지 덜컹 떨어진다/차디찬 발등에 떨어져 혼절 한 동백꽃/백련사 동백 숲에 들면 온 몸으로 쓰는 /붉은 길/혈서로 길을 낸다/휑한 바람에도 동백은 붉게 차오르고/아득한 강가에 물결 번지는 손풍금 소리
-<백련사, 동백림에 들다>  -필자의 졸시-

강진 여행은 진수성찬 남도한정식을 맛보기에 좋다. 친환경 쌀 강진 ‘호평쌀’로 지은 밥은 쫀득쫀득 입맛을 돋운다. 그 외 특산물로 강진한과와 딸기, 파프리카, 버섯, 전통장류, 토하젓 등이 유명하다. 짧은 시간에 강진 몇 곳을 둘러보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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