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생명으로 눈부신 봄을
그 어떤 화가가
그려낼 수 있을까?

거실의 통유리창은 집 앞 풍경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한 폭의 그림이다. 마당엔 꽃샘추위로 마냥 머뭇거리던 홍매화가 날씨가 풀리면서 하나 둘 피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절반이나 환하게 피었다. 매화가 벌어지면서 그 연분홍빛 한 송이 한 송이가 돋보기로 보듯 생생하게 드러나 보인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멀리 뒤로 배경이 되는 푸른 솔로 가득한 산과 그 아래 흐르는 초록강 때문이다. 늘 푸르게만 서있던 산도 그 아래를 흐르는 강도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꽃으로, 산의 푸른 솔은 솔대로, 청록빛 강은 강대로, 연분홍꽃은 꽃대로 그 빛이 함께 어우러져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 봄바람도 흥에 겨워 꽃가지를 흔들며 칭얼대는 정겨운 봄을, 이토록 생명으로 눈부신 봄을 그 어떤 화가가 그려낼 수 있을까?

열흘 전에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올해는 꼭 괴산을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예전에는 자주들 왔었지만 근래 들어 통 연락이 없다가 대여섯 명이 한 차로 내려온다고 한다. “우리가 이제 얼마나 더 나들이 하겠니~ 네가 해주는 시골밥상도 얻어먹고 봄나물도 캐고. 쑥 나왔지? 우리 쑥 캐러 갈 거야~”
다들 나이가 60대 중반을 넘은 사람이 얼마나 쑥을 뜯겠다고 몇 시간씩 시간을 들여 온다는 건지. 형제들도 오가기 어려운 요즘 형편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찾아와 얼굴을 확인하는 만남, 격 없이 가깝고 아끼는 친구들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은 날부터 나는 맘이 바빠진다. 집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고 알싸한 봄바람에 머플러를 동이고 집 뒤 윗밭으로 오른다. 쑥이 있나, 냉이는 어떨까, 씀바귀는, 왕고들빼기는 캘 만할까? 

요즘 시골에는 사람이 줄고 농사짓는 사람이 거의 80대를 넘겨 산 중턱에 묵정밭이 많다. 우리집 윗밭은 그래도 주인이 작년에 멀칭을 하고 작약을 심었다. 3~4년이 지나야 그 뿌리를 캐서 약으로 쓰기에 자주 오지 않는다. 그 옆으로 약 1000평 정도의 밭은 몇 년째 묵어 있어 작년에 자랐던 쑥대가 무더기로 마른 채 쓰러져 있고 그 아래로 새 쑥이 파랗게 돋아 오르고 있다. 나는 어린 쑥을 캐다가 멸치, 다시마로 우린 육수로 된장국을 끓이니 아주 보드랍고 맛났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봄나물을 캐다 먹던 습관 때문인지, 우리 나이 또래들은 봄나물 중 유독 쑥을 좋아한다. 어린 쑥은 국으로, 조금 크면 부침개로, 크게 자라면 쑥 버무리, 털터리, 쑥개떡, 쑥인절미, 쑥송편을 만들어먹고 남으면 냉장고에 보관해둔다.

친구들이 내려오면 집 주변에서 우리가 직접 키운 요즘 막 나기 시작한 표고와 부추를 살짝 볶고, 마지막으로 뽑은 시금치와 두부를 이겨 갓 짠 들기름에 무치고, 냉이는 된장양념에, 쑥은 모시조개를 넣어 시원하게 된장국을 끓일게다. 더덕은 두들겨 유장을 바르고 고추장 양념으로 발갛게 굽고, 돌미나리 물김치에 민들레와 씀바귀는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머위 잎 쪄서 쌈 싸고, 도토리묵 쒀서 달래양념장을 뿌리고, 우리집 대표메뉴인 청국장을 구수하게 끓이고. 묵나물, 고사리, 아주까리, 다래순, 머위대나물을 곁들이면 친구들이 좋아하는 시골밥상한 상이 될까. 나름대로 고민하며 메뉴를 짜본다.

내년에도 이렇게 친구를 맞이할 수 있을까, 서로 보고파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내가 맞는 이 봄을 다 나눠주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돼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다리를 놓아 봄꽃처럼 늘푸른 나무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우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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