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르포 - 강원도 산불피해 현장을 가다

▲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산불 피해를 본 서병임씨와 아들이 불에 타 무너진 집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집도 농사도 삶의 터전 모두 잃어
“너무 암담해서 눈물도 안 나온다”

강원 강릉 옥계에 지난 4일 밤에발생한 산불로 몸만 갖고 나왔다는 생활개선옥계면 회원인 서병임씨를 만났다. 산불이 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지만 마을 전체엔 매캐한 탄 냄새가 아직 자욱히 퍼져있고, 빙 둘러 있는 산들이 온통 검게 탄 모습이라 산불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 바로 아래 위치했던 서 씨의 집은 전소돼 형태조차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고추와 옥수수 농사를 준비하느라 모종을 키우던 하우스도 앙상한 뼈대로만 남았고, 고물처럼 엉겨있는 경운기가 봄 농사를 준비했던 상황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불이 난 지난 4월4일 밤 11시 경, 늦게까지 농사일을 하느라 지쳐 잠들었던 서 씨 부부는 마침 혼자 깨어있던 아들 정재교씨 덕분에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정 씨는 그날 저녁에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리에 심난한 마음에 자지 않고 뉴스를 보고 있다가 속보 자막을 통해 옥계 남양리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밖에 나가보니 이미 산 전체가 활활 타고 있어 가족에 대피를 외쳤다.

“엄마! 불이야 빨리 피해” 가족은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하고 길에까지 번지려는 불 속을 뚫고 뛰었다. 결혼해 30년을 가꾸며 지켜온 집은 이제 폐허로 변했다. 서 씨는 벼농사와 오디농사, 그리고 고추 옥수수 들깨 등을 하는 복합농이다. 이번 화재로 오디나무 100그루도 전소됐다, 그나마 좀 떨어져있던 논에 일하러 나갔던 트랙터만이 온전히 남은 것은 다행이다.

“자식같이 키우던 모종들이 타버려 올 한해 농사는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며 서 씨는 아쉬워했지만 아들 정 씨는 “엄마, 농사 또 하려고?”하며 이 와중에도 농사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놀라 바라봤다.

현재 서 씨 가족은 아들이 일하고 있는 남양 분교장에 임시방편으로 머물고 있다. 살던 집과 1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데 막막할 뿐이죠.” 집도 농사도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서 씨는 “암담하고 눈물도 안 나온다”며 결국 목이 메었다.

이번 강원도의 불은 매년 이맘때 불어오는 시속 108k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이 화재 확산의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 씨의 집과 거리가 떨어져 거주하는 한국생활개선강원도연합회 김형숙 회장은 불길이 워낙 거세서 집 마당까지 날아 들어오는 불덩이를 끄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고 얘기한다.

“뭔가 타는 냄새가 나서 한 밤중에 밖에 나와 보니 산이 벌겋게 활활 타올라 ‘불났다’고 이웃들에 외쳐 깨웠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불이 마당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는데, 새벽이 되고 바람이 잦아지면서 불똥이 겨우 멈췄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찍 화재 소식을 알고 사람이 집에 있어 물을 뿌려놓거나 벽돌 구조의 집들은 다행히 화재를 면했지만, 목재로 지어진 집들의 피해는 컸다. 이런 사실을 증명하듯 바로 옆집인데도 한 집은 전소됐고 다른 한 집은 멀쩡한 곳이 더러 보였다.

▲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농업현장. 까맣게 탄 뒷산이 눈에띤다.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죠”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끈 놓지 않아

양배추 브로콜리 등 채소 하우스를 하는 또 다른 옥계면생활개선회원인 현내4리 심금숙씨 집 역시 큰 피해를 봤다. 심금숙씨 부부는 간호사인 딸이 3교대 근무를 하고 늦게 퇴근해 불을 피할 수 있어 생명을 구했다. 또 다행히 바로 전소된 집 옆의 한라시멘트 사원 주택에 회사의 배려로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한 평생 농사를 지어온 심금숙씨의 남편 최부길씨는 불탄 집 주위를 정리하는 대신 농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농사는 지어야죠.”

잿더미가 된 집보다도 농사 걱정을 하느라 하우스 정리에 나서는 최 씨지만 맥없이 무너져 내린 저온저장고, 농기계와 타버린 비료 등이 있어 많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현재 옥계지역의 산불 피해 농가는 60여 가구로 파악되고 있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해를 본 마을엔 대부분 노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에 분산돼 있다. 옥계면사무소에 지원 나온 강릉시청 김세용 계장은 “옥계면에만 약 29억 원 피해가 발생했고, 대부분 농가”라며 “피해를 정밀히 조사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마을 전체로 재가 날아다녀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이 따갑고 탄 냄새가 깔려있다. 혹여 잔불이 발화할까 순찰을 돌고 있고 소방차도 경계태세를 보이며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인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산불 피해 주민은 주거비·생계비 등 생활안정지원금을 받게 된다. 집이 불탄 경우 주거비(복구비)로 최대 1300만 원까지 지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협의에만 최소 3개월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다. 산불은 수해와 달라 피해 현장을 유지해야 하기에 인력이 동원돼 복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 그래서 화재 피해 조사와 복구를 기다리기까지 화재 피해 주민들의 속은 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