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87)

‘로또 당첨된 남자와 결혼 할래요’(중3 여학생),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알바’(중2 여학생), ‘돈 많은 남자 세컨드 되는 게 소원’(중3 여학생)
최근 여중생들의 ‘장래희망’ 상담사례에 나타난 기상천외의 답변들이다. 이 학생들이 얘기한 장래희망의 궁극목표는 모두 ‘돈’에 귀결돼 있다. 그 바탕에는 자신들의 가난한 아버지·어머니와 가족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또한 한 조사기관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나는 서른 살에 무엇이 되고 싶나?>에서 드러난 희망직업 역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가정형편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것이 눈길을 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전체 중 최하위 25%인 강북지역의 열악한 환경 속 아이들의 경우, 일반사무직(회사원 등)-중·고교 교사-모르겠음-제빵사·요리사·네일아티스트·동물조련사·사육사 등의 순으로 희망직업을 꼽았다.

비교적 학교공부나 가정형편과는 거리가 멀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직업군이다. 반면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최상위 25%인 강남 부촌의 아이들은 중·고교 교사-일반사무직 등 안정된 직장을 우선 꼽은 것 외에 의사-외교관-변호사-대기업CEO-로봇공학자 등의 직업을 들었다. 한 눈에 봐도 장기간 힘들게 돈 들여 공부해야만 얻을 수 있는 직종들이다. 부모와 가정 형편에 따라 꾸는 꿈 마저도, 희망 마저도 지극히 현실적이란 게 여실히 드러난다.

‘돈’과 그에 따르는 ‘권세’와 ‘명예’가 지배하는 게 다인 어른들의 냉혹한 경쟁세상 속에서 루저같은 자괴감을 느끼며, 그들이 얘기한 바 ‘난장판’인 교실에서 획일적인 빡빡한 학교생활을 겨우겨우 지탱해 간다.

자고새면 종일 코를 박는 스마트폰과 TV예능프로들은 그들만의 해방구다. 기본 철학이나 염치 하나 없고, 똘끼만 가득한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의 감각적인 ‘낄낄저널리즘’이 넘쳐나는 예능프로에 빠져 그들만의 대리만족감을 얻는다. BTS(방탄소년단)며 소위 잘나가는 스타들이 보여주는 건, 주체 못하는 거친 광기와 동물적인 우월감, 그리고 천민 자본주의가 쌓아주는 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거기에 열광하며 쉽사리 손에 닿지도 않을 ‘건물주’라는 독버섯같은 ‘슬픈 꿈’을 키워간다.

부모들은 “공부하기 좋아하는 학생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대학 갈 때까지만 참아라” 하지만,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세상에 제대로 발 붙이기 어렵고 사회는 명쾌한 답을 쉽사리 주지 않는다. 그렇게 떠도는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은, “열정·인내·도전정신이 없고, 이기적이고 위·아래도 몰라보고, 싹수 없이 유아적인 심성으로 불평불만만 가득하다”고 밀어붙인다.

이런 토양에서 무엇을 보고 우리의 아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까 싶다. “누가 그러데… S대 수석합격 한 아이가 ‘이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쉬웠다’카더라고…” 그런 “~카더라” 얘기 말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의 눈높이에서 따뜻하게 세상을 같이 바라봐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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