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 농약노출 농민들 치매위험 높다

▲ 오랜 시간 농약에 노출되면 인지기능 저하, 당뇨병,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원주연세의료원 고상백 교수 “우울과 당뇨병에도 악영향”
농약 사용 시 마스크·방제복 반드시 착용해야
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서둘러 도입할 필요성 커져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농업인의 55.6%가 농약중독을 경험했고, 그 중 26.8%가 중증 이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농약사용이 불가피한 작업환경에서 농업인들은 농약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약중독 연구는 대부분 급성에 관한 것으로 만성적인 농약노출 연구는 미진했다. 이번에 연세대학교 원주연세의료원 고상백 교수팀은 만성적인 농약노출로 인지기능 저하, 우울과 당뇨병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2005년부터 14년에 걸쳐 강원도 원주와 평창 주민 3162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 고상백 교수

농약노출, 신경계·효소에 악영향
그 중 169명을 대상으로 한 뇌MRI, 혈액검사, 인지기능검사 등을 한 결과 치매 고위험군인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최대 2.78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기능을 측정하는 한국판 몬트리올 인지평가 설문(K-MoCA)은 30점 만점으로 22점 이하부터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것으로 판단한다. 경도인지장애는 일종의 치매증상의 신호로 사람의 사고능력 중 특히 기억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고상백 교수는 “농업인은 비농업인보다 인지기능 저하가 2.44배 높았고, 농약을 쓰는 사람이 안 쓰는 사람보다 2.41배 높았다. 농약을 아예 쓰지 않는 사람보다 저강도로 농약을 쓴 사람은 1.98배, 고강도로 쓴 사람은 2.78배까지 높았다”고 분석결과를 설명했다.이번 결과는 신경독성물질인 농약이 신경계나 관련 효소에 영향을 미치고, 주의력과 기억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고상백 교수팀은 당뇨병과 우울에도 농약노출이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농약노출과 당뇨병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농약을 20년 미만 쓴 농업인은 1.68배, 20년 이상 쓴 농업인은 2.1배 높았으며, 1년에 10번 이상 사용한 농업인이 2.0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노출과 우울 증상의 상관관계를 측정한 결과, 비농업인의 우울감 응답 비율이 4.1%였던 것에 반해 농업인은 6.8%였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4.2%였지만 농약을 쓰는 사람은 7.1%의 응답비율을 보였다. 농약을 20년 이상 쓴 사람은 9.3%, 1년에 11번 이상 농약을 쓴 사람은 7.6%, 고강도로 농약을 쓴 사람은 9.3%로 아예 쓰지 않았거나 적게 썼거나 저강도로 쓴 사람보다 모두 높았다.

농업인 특수검진 미룰 수 없어
고상백 교수는 “1차적으로 농업인은 농약 사용 시 마스크와 방제복을 착용하고, 작업 후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며 농약은 피부와 호흡기로 유입되는데 마스크는 쓰면서 방제복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고 교수는 “이번 연구는 농약노출이 신체적으로는 물론 신경계까지 악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결과를 도출해 의미 있는 것”이라며 만성적인 농약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농업인 특수건강검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농어업인 육성법에는 농촌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그 비용의 일부나 전부를 국가와 지자체나 지원할 수 있음을 명시했지만 아직 실시는 되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선 2020년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마땅한 의료시설이 없어 병이 병을 키우는 농촌에서 고상백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계기로 농업인의 특수건강검진의 논리적인 근거가 마련된 만큼,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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