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86)

개와 고양이, 새 같은 반려동물에게 영혼이 있을까? 영혼의 사전적 풀이는, (1)육체에 머물러 그것을 지배하고, 정신현상의 근원이 되며, 육체가 없어져도 독립해 존재할 수 있는 것. (2)미개종교, 특히 애니미즘에 있어서 무생물이나 동식물에 머무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다. 이 풀이대로라면, 애니미즘 세계에서는 무생물이나 동식물에 영혼이 있다고 봤다.

오스트리아 동물학자로 동물행동학(비교행태학)의 창시자인 콘라트 로렌츠(Konrad Z. Lorenz :1903~1989)의 조류에 관한 탁월한 관찰기록들을 보면, 하등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로렌츠는 집에서 갈가마귀 여러 마리를 직접 길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숫놈 한 마리가 로렌츠를 자기의 연인으로 찍어놓고 별의별 애정을 다 베풀더라는 것이다. 입구가 겨우 20~30cm밖에 안되는 자기 우리로 로렌츠를 유인하려고 있는 아양 없는 아양을 다 부리는가 하면, 자기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벌레먹이를 물고 와서는 로렌츠의 입에 들이밀면서 그를 적잖이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로렌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먹이를 달라는 뜻으로 깍깍~흉내를 내고, 그때마다 그 숫놈이 입으로 물어다 주는 벌레를 두눈 딱 감고 입을 열고 맛있게 받아 먹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도로 문명화 된 동물성’을 가졌지만 인간도 사회를 구성하는 동물의 하나로 생각했던 로렌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 기르며 같이 생활한 갈가마귀나 오리, 거위에게도 필시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음 직하다.

그러한 생각은 지난 2월19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1933~2019)의 반려고양이 슈페트의 경우도 비슷할 것 같다. 전속경호원과 두 명의 보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주인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이 고양이를 두고 라거펠트가 “내 세상 의 중심”, “할 수만 있다면 슈페트와 결혼하고 싶다” 했으니… 라거펠트가 죽자 그가 남긴 유산 2억 달러(약 2247억 원)가 이 암코양이에게 상속될지 여부에 세상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교회와 성당들이 다소 생뚱같은 일로 고민에 빠져 있다. 신자들이 자신이 기르던 반려동물의 장례식과 추모예배를 부탁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은 영혼이 없고, 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교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원칙론을 앞세워 신자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 그런가 하면, 생과 사가 되풀이 된다는 윤회설을 믿는 불교계에서는 합동천도재, 반려동물을 위한 49재 등의 형식으로 날로 늘어나는 반려동물 장례 요청을 수용하고 있다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1천만 시대의 요지경 속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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