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회 농촌 스토리 공모 우수상 수상작 - 경남 의령 박말연씨의 ‘내게 말을 걸어온 당신(세월속의 기쁨)’

본지는 농촌지역에 전승돼 오거나 회자되고 있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발굴·수집해 농촌문화 콘텐츠 자원을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소재를 제공하는 농촌 스토리 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지면을 통해 제3회 농촌 스토리 공모 수상작들을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우수상을 수상한 경남 의령군 박말연씨의 글을 싣는다.

 직접 짠 우유로 건강한 치즈·요거트 만들어…
 세월의 물결따라 50대 맞았지만 도전 안 멈춰

“꽃향기로 힐링하는 꽃동산 만들고파”
1969년 경남 의령군 대의면 중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내가 사는 곳은 행정마을로 친정의 윗동네다. 지리산에서 부는 바람과 자굴산, 한우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추운 겨울날은 대관령 기온과 같다고 한다.

2남 2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며 목장을 시작한지 30년이 다 돼 가지만 착유소를 가지고 착유를 한지는 20여 년 정도 되어간다. 한우에서 젖소비육으로 착유소로 유가공으로 체험목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착유를 하고 난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남편과 취미 삼아 유가공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신선한 우유로 요거트와 치즈를 만들면 어떨까! 전남 순천대 유가공 배인휴 교수님의 교육을 수년간 들으면서 1급 유가공사 자격을 갖추기 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과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착유하고 6시에 출발해 순천대에서 교육을 마치고 오면 저녁 7시 또다시 저녁 7시 또다시 착유하고 밤늦은 시간 배운 걸 실습해보고 다음날 순천대로 다시 교육...

경남 유가공 회원들과의 함께한 귀한 배움의 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경남농업기술원에서는 스터디시간에 경상대학교 김원재 교수님께 이론을 배웠으며 독일 정용삼 마이스터와 캐나다 아트힐 교수님으로부터 현지의 생생함과 살아있는 요거트와 치즈교육을 받았다.
정용삼 마이스터가 계시는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알차고 꼼꼼하게 배운 선진국의 유가공 교육은 지금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살과 피로 시간이 갈수록 깊이 되새겨진다.
직접 만들어 제조해서 판매·체험·교육하는 유럽의 목장을 보며 앞으로 우리가 건너가야 할 길에 접목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곳의 목장들도 젊은이 보다 나이드신 분들의 비중이 많은 것 같았다.

지금 우리목장에서 만든 요거트와 치즈는 농·축협 마트와 직거래·쇼핑몰·홈페이지에서 골고루 판매하고 있다. 치즈 만들기 체험과 목장체험, 송아지, 우유주기, 시골 체험을 찬찬히 하며 땅과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내 인생의 참 기쁜 일은 제1회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에서 주최한 ‘농맘’으로 선정된 것이다.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은 제품의 맛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이웃을 가족처럼 변함없이 잘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10년 동안 이것저것 먹어보고 안 된 분들이 우리 야베스 요거트를 먹은 후 시원하게 해결 할 수 있었다는 분들이 연락 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제품을 만들 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만든다. 만드는 이가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 가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안다. 평화통일이 되어 저 북한 주민에게도 우리 요거트 치즈맛을 함께 하고 즐기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꿈이 현실로 되리라...

나에겐 예전부터 바라는 게 또 하나 있다. 우리 동네를 꽃방석이 있는 예쁜 꽃동산을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실크로드의 이야기가 넘치는 장시성(강서성) ‘유채의 바다 무원의 봄’이라는 제목의 책 속에서 이 마을을 보았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이 마을이 꼭 우리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꽃향기로 힐링할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말이다.
우리 집은 딸만 5명인 딸부잣집이다. 그중에서도 넷째 딸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자라온 나는 넷째 딸이다. 그런 나를 증조할머니는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가을날 빨갛게 익은 홍시를 주워 감잎에 싸서 깨지지 않게 두손을 모아 가져다 드렸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는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고맙다이~!” 라고 칭찬하시던 증조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모의산골의 겨울은 매서운 매의 눈처럼 차갑고 무서웠다. 합천군 삼가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눈 오는 겨울날 차가 못 간다고 하기에 친구들과 산을 넘어 걸어서 집으로 왔다. 카메라를 사진관에서 빌려서 찰칵 찍고, 눈길에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서로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하며 지나온 학창시절. 영호, 점순, 구식, 현수, 덕래, 영숙, 순구, 희자, 순희, 향란, 대영, 세봉이 다들 잘 지내리라 생각해 보고싶다야~

나에겐 보물이 4개나 있으니 부자다. 위로 아들 둘 아래도 딸 둘 큰 딸아이는 재작년에 결혼해 남매를 두었다. 아른거리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얼마나 예쁠지... 아들딸, 손자, 손녀들이 어디서든지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한다.

작은 딸은 부산 S대학교 치위생과에 다니다 너무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1년만 하면 치위생사 자격을 갖출 수 있고 그 자격으로 취업의 길도 보장되어 있으니 꼭 졸업을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안정된 직장 속에서, 틀에 박힌 사회생활이지만 내 생각엔 더 좋을 것 같았다. 꼬박꼬박 월급도 받고 여유있는 시간도 갖고 말이다.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던 딸은 결국 2학년 1학기를 다 니다 시골로 내려왔다. 부모님의 일을 도와서 사업가 CEO의 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아예 시골 사업장에 오긴 했지만 본가에 살기보다는 집에서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진주에 방을 얻어 출퇴근하고 있다. 일은 부모님 사업에 힘을 실어 같이 하지만 아직은 젊은지라 홀로 서며 진주라는 도시에서 지내고 싶은가 보다. 딸의 결정에 찬성을 하며, 서로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위로가 돼 아버지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딸이 대견하다. 올 8월달에는 A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벤처경영 우수 사례 우수상까지 받아서 더 대견스럽다.

밤잠을 자지 않고 서류작성을 하며 하나하나 꼼꼼히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대단하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끝에는 멋진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올 대입에 다시 도전을 해서 배움의 길도 새로 열고자 엄마인 나에게는 넌지시 말해주었다.
나는 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편하고 수월한 길만 가려고 하기 보다는 목표를 세워 헤쳐나가면서 하나둘 세워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기에 협력하는 방법도 터득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매주 화~목요일은 서울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에 가서 판매를 한다. 아가씨 혼자 한다고 서울 사는 언니가 도와주고 싶다며 같이 와서 도와줄 때도 있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부족한 것이 많아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보일듯 보이지 않게 함께 해주는 친구도 있으며 고향 선후배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정말 고맙다. 그럴때면 요거트와 치즈를 택배로 배송해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랫마을 암하마을과 우리마을 행정마을은 몇 년 전부터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다.

작지만 이렇게 고마운 분들께 쌀도 가끔 보내드리고 있다. 남편이 며칠 전에는 서울에 다녀오면서 개척교회 교인 10명 정도 섬이며 개척하시는 목사님이 매주 한번 독거노인 점심밥을 해주신다는 소식을 지인으로 듣고 와서는 우리가 쌀을 일주일에 번이라도 보내주자고 하여 흔쾌히 맘을 모아 그리하자고 했다. 하루 1끼로 살아간다는 노인이 몇십 명이나 된다고 한다. 서로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큰 아들은 고2인데 진로를 실용음악 기타전공으로 가고자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예체능으로 갈려고 하기에 힘든 점도 많기는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기에 힘들지만 그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새벽 2~3시까지 연습하며 다음날 일어나서 학교로 가서 수업하고 기타레슨 받으며 나름 열심히 하는 아들 또한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후회없이 멋지게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겠지만 연습과 끈기있는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혼자는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내가 하는 이 사업도 다른 사람에게 많이 도움이 되어야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다. 각자가 하는 것이 모두 다 서로서로 다른 사람에게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너무 모든 걸 잘 하려 하지 말거라. 네가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며 네가 부족하고 없는 것은 또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인생이니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을 해준다.

부모가 50대 그리고 딸이 20대이니 대화할 수 있어 좋다. 딸에게 가르치기보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딸이 고맙기도 하다.
어쩔 때는 알람을 못 들어서 출근시간을 못 맞추고 늦게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참 속상하지만 그 속상함을 일일이 다 내 뱉을 수 없다. 침 한번 크게 삼키고 다음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말이다.
이런 날이면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깊은 속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맘 편하게 더 잘 해드려야겠다고 깊이 생각해 본다.

일상의 생활은 늘 바쁘고 새롭다. 매주 화요일은 동네 회관에서 어르신께 한글 가르쳐주기 봉사를 한다. 봉사라기보다 내가 그분들의 인생을 서로 나누기 한다고 할까! 도와주는 할머니는 낫놓고 ‘ㄱ’ 자도 모르는 분이셨으나 지금은 소리내어 읽으면 또박또박 쓰시는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배움에 한이 맺혔으면 90세가 다 된 노년에 힘들고 희미한 기억이지만 즐거운 맘으로 배우시는지... 열정을 뒤따라 가며 나도 어르신들의 배움에 덩달아 행복해진다.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뵙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꿈이 없는 건 아니다. 한글의 배움에 목이 마른 어르신들을 대할 때면 배움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음을 다시 한번 더 알게 되었다. 마음 속에 열정을 더 불태울 수 있도록 아니 그 배움이 삶에 즐거움이 되고 활력이 넘치는 건 아닐까! 젊은이에게는 삶에 즐거움이 되고 활력이 넘치는 건 아닐까! 젊은이에게는 인생 황혼기에 살아가는 비법을 알게 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살아가는 큰 기쁨이 아닌가. 그것도 건강하니 할 수 있는 것이니 더한 행복이라 할 수 있겠다. 어김없이 매주 화요일이 되면 유모차를 밀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오시는 어르신을 뵐 때면 하나라도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함께하시는 선생님과는 어르신들에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의 단계라고 할까 초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도록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자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과 내가 계획하는 그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황혼기에 손을 놓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또 하나의 살맛나는 인생 젊은 시절에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이루어 드리고 싶은 맘뿐이다. 해나가는 과정에 어려움과 힘듦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쉬운 건 없지 않은가. 끝까지 잘해서 환한 웃음으로 초등학교 과정 수료증을 받은 모습을 맘속으로 예쁘게 그려본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지금의 50대 이상의, 아니 그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어느덧 나도 세월의 물결에 배를 타고 흘러가니 인생의 바다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50의 줄에 막 서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한 생각뿐이다. 첩첩산중에서 목장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들뿐이며 사계절 따라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시간들,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요즘이 나에겐 더없는 행복이다. 누군가로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들리지 않던 것들도 이제는 조금씩 들리고 보인다. 봄에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을 보면 감탄을 한다. 매서운 추위 비바람 속에서도 잘 견디어 자기의 모습을 알리러 온 제비꽃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여름에는 아스팔트 위에 계란후라이를 할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고개숙여 맞서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을 보며 끈기에 감탄했고 가을의 풍성함엔 또 얼마나 감사한지 난 단지 뿌리고 심었을 뿐인데 땅위로도 땅밑으로 열매가 주렁주렁 하다.

이 가을처럼 열매가 가득한 인생이길 바라본다.
한 달에 1번 정도는 늦둥이 막내아들이 다니는 대의초등학교에 책 읽어 주는 엄마로 함께 하고 있다. 수요일 아침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짧은 시간 이었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 맞이하는 신선함이다. 처음으로 읽어 주러 가는 날은 100번도 넘게 읽었다. 어떻게 하면 전달이 잘 될까 싶어서 이다. 읽고 읽고 또 읽으며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밤새도록 읽었다. ‘똥꼬땡감’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웃음과 잔잔한 감동으로 쑤~욱 빠져들어 집중해서 들었던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학교 오는 내내 기대되는 시간이었고 초롱초롱 눈빛을 마주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늘 행복 가득이었다. 더 많은 사랑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의령도서관에서의 배움은 늘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었다. 구연동화 자격증을 취득했고, 의령도서관에서 실시하는 매주 토요일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유아와 초등학생 대상으로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아는 지식으로만 하는 것 보다 체계적인 강사선생님의 도움으로 전문가의 능력을 갖춰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와서 듣는 시간은 자녀들과 사랑을 더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내 일 다하고 언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나의 일은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도우고~ 혼자 태어났지만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게 인생의 삶이다.

가까이 계시는 큰 형부와 큰 언니께 늘 감사를 드린다. 마트에 제품이 없으면 연락이 온다. 바빠서 갈 수 없으면 직접 오셔서 채워주시기도 한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꽃다운 스물 하고도 셋 아랫마을 말연이와 윗마을 길식이가 결혼하는 1991년 4월 어느 그날도 벚꽃이 만개했으며 온 산에는 진달래로 물들은 꽃천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콤달콤한 요거트 맛처럼 은은한 치즈 향처럼 프리지아 향처럼 깊은 가을국화 향처럼, 좋은 향기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시어머님, 친정어머니, 가족들 이웃 친지들 우리 젖소들, 강아지, 고양이, 요거트, 치즈 모두모두 감사하다.

■  현장인터뷰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목장에서 살아요”

독일서 본 선진목장처럼 아름다운 목장 꾸미고파
목장·가공공장·농촌교육농장, 차곡차곡 단계 밟아가

▲ 박말연씨의 꿈은 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져 누구나 와 보고 싶은 아름다운 목장을 만드는 것이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
“첫 도전에 이렇게 인정을 받아 놀랐어요.”
우연히 의령도서관의 자서전 쓰기 강좌를 들으며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심코 시작했다는 박말연씨. 스토리공모에 우수작으로 선정돼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 놀랐다지만 그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5년 남편 전길식씨와 시작한 목장은 한우 5마리로 시작했었다고. 그 후 젖소 비육으로 바꿨지만 가격이 롤러코스터 같아 또 다시 착유를 하게 됐다고 한다.
“착유를 하려면 보통 부지런해야 되는 게 아니에요. 새벽 4~5시에 일어나 젖을 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저녁에 다시 젖을 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요. 소들을 두고 어디를 갈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가족여행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 인터뷰 당일 아침에 태어난 송아지의 미처 떼지 못한 탯줄을 핥아주는 어미소.

더군다나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낙농가를 대상으로 한 유가공 교육을 받으며 치즈와 요거트 등의 가공제품을 직접 생산하게 되면서 하루 수면시간은 3시간 정도라고. 짬날 때마다 쪽잠으로 버티며 고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축산선진국인 독일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축산 마이스터 칭호를 받은 정용삼 박사와의 만남이 큰 계기가 됐다. 29살 젊은 나이에 독일에 광부로 갔다 그곳에 정착한 정 박사는 자신이 가르친 목장을 견학시켜 주며 우리나라 목장의 미래 청사진을 가슴 깊이 새겨주었다고.

“9박10일의 일정이었는데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셔서 하루에 9개 목장을 둘러봤어요. 솔직히 독일에 왔는데 여기저기 관광도 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박사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목장 수십 개만 갔다 왔죠. 그곳에서 느낀 건 주변 경관과 튀지 않도록 목장이 아름다운 풍광을 가졌다는 것과 대를 이어 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당시 우리에겐 생소했던 직접 짠 우유로 치즈와 요거트를 가공해 로컬푸드 형태로 판매하는 점도 신선했고, 카드결제 시스템도 완비돼 있더라구요. 100년도 넘은 오래된 옛 건물을 헐지 않고, 카페나 체험장으로 활용해 내가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구요. 진정한 산교육이 됐어요.”

독일서 본 선진목장에 목표 생겨
독일을 갔다 온 이후, 박말연씨의 열정은 더 불타올랐다. 필요한 교육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고, 정부에서 실시하는 각종 인증에도 적극 참여했다. 목장형 유가공 교육, 목장경영 전문화 과정, 치즈사관학교, 벤처농업 융·복합산업 실무교육 등 무수한 교육을 이수했고,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 경상남도 추천상품 지정과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의 ‘농맘’ 인증까지 마치며 꿈꾸었던 목표를 향해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나갔다.

그래서 지금의 ‘야베스 목장’이라는 브랜드로 직접 짠 우유에 소금 외에는 어떤 보존제나 향신료도 넣지 않은 건강한 유제품을 만들어냈다. 학교급식, 홈페이지와 직거래장터, 식품박람회 등에서 홍보와 판매를 하고 있는 박말연씨는 우유잼 등 신제품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매주 2차례 열리는 과천 경마장을 비롯해 수도권의 직거래장터를 혼자 도맡아하는 둘째 딸이 대견스럽다고.
“남편도 어렸을 때부터 농사꾼이 꿈이었어요. 집안에 반대가 많았지만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의령에 정착해 저와 지금의 목장을 꾸렸어요. 둘째 딸도 안정적인 진로 대신 우리를 돕겠다고 했을 때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이젠 대를 이어 목장을 하는 독일의 선진목장처럼 ‘우리도 못할 것 있어’라는 마음이 들어요.”

▲ 야베스 목장은 직접 짠 신선한 우유로 만든 요거트에 소금 이외 어떤 보존제나 향신료 없이 내 아이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건강한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 농촌교육농장 인증까지 받은 박말연씨의 도전은 마치 미술관,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독일의 목장처럼 그림 같은 경관으로 꾸미는 것이다. 축사 앞에 갈대와 국화를 심고, 토끼와 닭, 강아지,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름다운 목장으로 체험객들을 맞을 계획이다.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저와 함께 365일 중 쉬는 날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바삐 살고 있는 우리 남편에게 진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목장에 공장, 그리고 농촌교육농장까지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남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라는 노래처럼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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