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남녘에 꽃소식 피어오르고
머지않아 이 산골마을에도
꽃피어 흐드러질테지...

괴산엔 봄이 느리다. 아직도 겨울풍경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멈춰 있는 것 같다. 남녘엔 개나리 피고, 진달래도 피고, 매화도 피고 진다는데 여기는 아직 이른 봄이다. 그저 홍매화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기는 했다. 화단 경계에 심은 회양목에 꽃이 피었는지 벌들이 웅웅거리며 들락날락 소란스럽긴 하다. 강가에 새풀이 돋을락 말락, 물가 버들가지에 연노란 빛이 여인의 속살같이 비칠 듯 말듯 하다.

‘갯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놓고 보소서 / 봄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 여기소서’ 조선 기생 홍랑의 연정으로 갯버들에 새잎이 나기는 하나보다. 태연한 척이었나. 나 역시 봄을 기다리기에 마음이 너무 조급했나 보다.
봄은 바람이다. 북방의 사나운 눈보라를 타고 내려와 연둣빛으로 불어온 봄바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또 변덕스럽기도 하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는 말도 있듯이 꽃샘바람처럼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은 매섭기도 하다.

이때쯤이면 경상도 남쪽 끝자락 내 고향 진해는 벚꽃축제 ‘군항제’가 열린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순 사이 벚꽃으로 물드는데, 온 시가지가 벚꽃 천지인 진해는 다른 벚꽃장처럼 의도적으로 관광용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부터 심겨져 100년이 넘은 왕벚꽃나무로 그 화려한 자태며 만개 후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은 그 꽃비를 맞아 본 사람만이 안다.

내가 진해여중·고 재학시절, 해마다 군항제에 전교생이 매스게임을 했었다. 한 달 전부터 체육시간은 물론 방과 후까지 전교생이 동원돼 연습하고 맞춰 군항제가 열리는 4월1일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 앞에서 진해 시민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추모제를 올리고 나면 우리의 매스게임이 시작됐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선을 맞추며 도형을 만들면 시민 모두가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나 군항제가 끝나고 나면 텅 빈 거리에 떨어진 꽃잎이 구름처럼 여기저기를 봄바람에 몰려가는 풍경은 왠지 슬프고 허망했었다. 요사이 유행하는 ‘봄바람에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진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란 노래가 딱 어울리는 때이기도 하다.

봄이면 내입에서 맴도는 노랫가락이 있다. 아주 오래됐는데도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 내 젊은 엄마는 진해 중앙시장에서 수예점을 하셨다. 봄이 되면 시장번영회에서 상인 다 함께 봄나들이를 갔었다.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오면 엄마는 중앙시장의 명가수였다. 늘 부르는 18번은 ‘봄날은 간다’였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실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원로가수 백설희 씨의 가늘고 낭랑한 체념어린 목소리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는 슬픔이 뭇사람의 심금을 울려 놓았다.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엄마의 콧소리 섞인 간드러진 발성에 털 뭉치같이 얽혀있는 엄마의 슬픔이, 그 시대 여자의 일생이 애절하게 터져나오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그 추억으로 가슴 저릿한 그리움이 돼 내 입에 맴도나보다. 남녘에 꽃소식이 피어오르고 머지않아 이 산골마을에도 꽃피어 흐드러질테지. 오늘은 무슨 기별이 올려나~ 종일 궁금한 3월의 끝자락에서 봄노래 한 자락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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