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55)

▲ 사진출처/칼 라거펠트 트위터

그의 차림은
세월의 추함 뛰어넘어
강한 정체성을 각인…

칼 라거펠트는 패션계의 황제요, ‘살아있는 신화’였다. 2~3년 버티기 힘든 패션 디자인계에서 85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장장 65년간 정상에서 일했다. 세상을 뜬지 한 달이 됐는데도 그에 대한 패션계의 추모 열기는 식질 않는다.

칼 라거펠트는 명품 브랜드인 펜디에서 54년간, 동시에 37년간 샤넬의 수장으로 일하며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다. 코코샤넬이 1971년 세상을 뜬 뒤 진부한 브랜드로 침체를 겪던 샤넬이, 1983년 라거펠트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고부터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샤넬의 우아한 트위드 재킷이 젊은 층까지 사로잡는 경쾌한 스타일로 변신했고, 하위문화의 상징이던 데님이나 가죽 같은 소재도 과감히 사용하며 인기를 높였다. 싸구려 비닐의 긴 부츠와 장갑, 속이 다 보이는 가방을 쇼에 등장시켜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다. 마담 샤넬의 정신과 핵심 디자인 요소들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대담한 디자인 등 자신이 생각한 시대적 혁신 요소들을 조합해냈다. 샤넬의 트레이드마크(   )를 의상이나 가방에 처음 새겨넣기 시작한 것 역시 라거펠트였고, 다른 명품브랜드들이 뒤따라 했다.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평가도 따냈다.

칼 라거펠트는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 한국에 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색동저고리와 조각보 그리고 한글 등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특별히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글자”라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칭송하기도 했다. 작년 김정숙 여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한글이 들어간 샤넬의 그 트위드 자켓을 입고 한국과 프랑스와의 우의를 다진바 있다.

그는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이끈 것 못지않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어두운 컬러의 슈트와 목 전체를 가릴 만큼 높은 칼라의 드레스셔츠를 입고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뒤로 묶은 흰 머리, 그리고 손가락 장갑차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 같은 그의 차림은 세월의 추함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강한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라거펠트는 휴가도 잘 안가는 일 중독자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해 하루 20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일을 삶의 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즐거워서 했기 때문에 굳이 휴가를 갈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는 독서광으로 대단한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다. 25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천재 디자이너가 수많은 책과 예술을 벗하며, 고독하지만 단단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지킨 힘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한 비결이 아니었을까. 바로 이런 삶이 그를 오랫동안 패션 디자인의 선두에 서게 했을 것이다. 

이런 고집스러운 삶 이면에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2000년 그는 사랑하던 패션 디자이너의 수트를 입기 위해 무려 42㎏이나 다이어트를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마디로 그는 필요하면 자신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85년의 고령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삶을 살다간 칼 라거펠트가 남긴 교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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