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53)

▲ 올봄 출시된 에르메스의 보자기 스카프

기하학적 배열도
색채의 조화도
감탄 자체다…

에르메스(Hermes)는 파리에 본사가 있는 최고급 패션브랜드다. 1837년, 말안장과 마구(馬具) 등을 파는 가게로 출발해, 세계 왕실과 귀족들에게 가죽제품을 팔았다. 에르메스가 패션 쪽으로 눈을 돌린 건 1920년대였다. 가방, 스카프, 벨트, 시계 등을 내놓더니 세계 50여개 나라에 총 320여 개의 매장을 차리게 됐다.

에르메스는 철저한 장인 정신과 희소성으로 매 시즌 독특한 패턴과 아름다운 색감을 담은 최고급 명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 그 에르메스가 한국의 조각보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의 전통 조각보를 카피해 ‘보자기의 예술(L'artdu Bojagi)’이라 이름 붙여, 올 봄 새로운 스카프를 내놓았다. 잠자고 있던 우리 전통조각보가 값비싼 스카프로 재탄생 된 것이다. 정성을 다해 조각조각 잇던 그 수고를 빼고 보자기 자체의 아름다운 모양만 살렸다.
이제 우리는 116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으로 우리 조각보를 사야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비싼 조각보 스카프가 벌써 매진이라는 소식이다.

조각보자기는 작은 천조각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만든 우리 고유의 예술품이다. 물건이 상하지 않도록 감싸 보관하기도 하고, 밥상을 덮는 상보로 그리고 귀한 선물을 싸는 예물보 등으로 썼다. 소박한 밥상위에 덮인 상보는 훌륭한 실내 장식품이 되기도 했다. 그 예술품들을 실생활에 활용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자기 개발이나 교육의 기회도 없이 힘겨운 노동까지 견뎌내야 했다. 그런 부녀자들의 손끝에서 어떻게 이리도 훌륭한 예술품이 태어났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아마도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바느질로 그 어려운 상황을 치유하고 극복했을지도 모른다. 갖가지 조각 천을 삼각, 사각, 원형, 바람개비 형 그리고 꽃과 풀잎 모양 등으로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인 듯 이어 붙여 독특한 질서를 만들어 낸 기하학적 배열도 그렇거니와, 색채의 조화도 감탄 자체다. 완성 후에 느끼는 뿌듯함과 용도에 따라 전해질 사랑의 마음이 더욱더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도록 했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조각들을 잇다 보니 세월이 갈수록 미적 감각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조각보는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다행히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이 일면서 조각보도 다시 관심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특별히 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교수는 “어떤 문명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색깔이 아름답게 모여 있는 것은 보기 힘들다”며 극찬했다. 2013년 방한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총재가 선물 받은 조각보 스카프를 하고 원더풀을 연발했고, 다음해에는 한국과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조각보로 장식된 머플러를 두르기도 했다. 조각보가 찬란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더 이상 세계화되지 못하고 멈춘 듯했다.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에르메스가 그 조각보의 우수성을 인정했다는 점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예술성이 도난당한 듯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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