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피식민지 언어가
지켜진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뿐…

거실 암막 커튼을 양 옆으로 걷어 부친다. 통유리창 안으로 자글자글 내리쬐는 노란 햇살을 깔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식후 약봉지 알약 서너 개를 털어 넣고 병아리 물마시듯 고개를 까딱까딱 물을 나눠 마시고 설 쇠고 무사귀환에 서로 안심한다. 걸친 윗도리 단추를 두 개 풀고 나니 시원한 것이 평균기온을 웃도는 따스한 겨울날이다. 어느새 일상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강 건너 앞산은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같이 작은 머리에 길고 거대한 몸통 끝에 잦아든 꼬리 모양으로 누웠다. 그 중턱에 괴산읍으로 나가는 도로가 측선으로 나있고, 언덕 아래의 호수같이 고요한 강물은 언덕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집 마당엔 참새떼가 여전히 풀씨를 먹느라 분주하고, 그 중에 참새와는 좀 다른 녀석이 보인다. 머리부터 꽁지까지 약간의 흰색과 검정, 갈색이 섞인 게 참새다. 생김이나 크기는 똑 같은데 전체 색이 푸른 회색에 가슴은 흰색이어서 눈에 확 들어온다.
남편에게 손짓하며 “저것도 참샌가?”하고 물었다. “아니, 저건 참새목에 속하는 박새야.”
역시 남편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충청도 깡촌 출신인지라, 자연에 대해 무지하고 궁금증을 못 참는 나는 기억력도 쇠퇴해서 어제 묻고 오늘 똑 같은 걸 또 물어도 남편은 웬만한 것은 다 대답을 잘해주는 살아 있는 사전이다. 덕분에 우리 집을 드나드는 새 이름을 내 마음대로 지어 불러도 남편은 다 알아듣는다.

설 직전에 남편은 친구와 미리 약속이 있었던 일본여행을 떠났다. 나는 혼자 3박4일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기저기 기웃대다 괴산에도 극장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칠성면에 자연드림이란 복합문화공간이 1월에 열었는데, 그 안에 극장도 생기고 지금 ‘말모이’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그 영화 소재가 언어에 관한 것이란 짐작은 갔어도 정확히 ‘사전’의 우리말인 줄은 몰랐다. 나는 국어를 가르치기도 한 사람으로서 열일을 제치고 ‘말모이’를 보러 자연드림을 찾아갔다.
괴산 군민은 50% 할인까지 해줬다. 영화는 막 시작됐다. 오랜만의 영화관람이라 깜깜한 영화관 좌석을 찾을 겨를도 없이 손으로 더듬어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주는 감동에 푹 젖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학 1학년에 샀던 사전을 찾아봤다. 1958년에 초판 발행했고 계속 증편을 해서 1971년 동아출판사에서 인쇄한 ‘새국어사전’이었다.
일제말기, 말과 글은 물론 우리 역사나 민족정신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일제는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회원 33인 모두를 잡아갔다. 모진 고문과 고통스런 감옥생활로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사전의 자료는 모두 불태워졌으나 만약을 위해 필사를 해 뒀던 것이 해방 후 1945년 9월8일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조선말큰사전’의 초고가 발견됐다. 무려 2만6500여 장의 분량이었고, 그 후 그것을 가지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었다.

‘말모이’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그려내고 있는데, 까막눈 김판수(유해진)가 우리글을 깨치면서 의미 있는 삶으로, 동료와 나라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감동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서 말하듯 피식민지 언어가 지켜진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우리말과 글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보고, 오늘날 전 세계가 하나로 소통하는 지구촌 마을로 뒤섞여 살더라도 우리의 핏속에 대대로 흐르는 역경을 이기는, 누구보다 강인한 민족이었음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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