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80)

“자신이 무거운 짐을 받아내면서 그 하중을 견디어 내는 아틀라스의 존재로 인해 이 혼란스러운 세상 자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버티어 낼 수 있습니다. 세인들은 아틀라스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아틀라스는 그 일을 무심하게 버티어 냅니다. 선생님이 바로 그 아틀라스 입니다.”

지난 10일 국립의료원에서 있었던 고 윤한덕(51) 국립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장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이국종 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추도사에서 고인을 ‘아틀라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주대 병원에 처음 배정돼 곧 운행에 들어갈 응급의료용 닥터헬기 기체 표면에 ‘윤한덕’이란 이름과 함께 콜 사인(Call sign)인 ‘아틀라스(Atlas)’를 크게 박아넣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여기서 이국종 교수가 말한 ‘아틀라스’는 저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신이다. 티탄 신족의 후손인 아틀라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인 채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와 형제간 이다. 아틀라스는 올림피아 신들과 티탄 신족과의 싸움에서 티탄 신족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신으로부터 평생동안 지구땅덩어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천벌을 받았다. 이로부터 아틀라스는 힘과 인내를 상징하는 고역의 존재가 됐다.

의학계에는 ‘아틀라스 증후군’이란 용어도 있다. 이 말은 영국의 정신과 의사 팀 캔토퍼(Tim Cantopher)가 명명한 신조어로,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스 신화 속의 아틀라스처럼 혼자서 힘겨운 직장생활과 육아, 가사 등의 가정을 책임져 극심한 압력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서도 가정에 헌신적인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를 꿈꾸는 남성들의 이른바 ‘슈퍼 대디(아빠) 증후군’을 말한다.
25년의 의사생활을 하면서 오직 ‘응급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꿈꿔왔던 고인은, 네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해오다 설 연휴 첫날 저녁무렵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과로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국종 교수는 외로운 혼을 달래듯 고인을 이렇게 회고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라는 세간의 진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물러 설 자리가 없는 사지로 뛰어들어서는 피투성이 싸움을 하면서도 다시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리해 내는 선생님께 저는 항상 경외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리고 이 교수는 절규하듯 말을 이어갔다. “…본인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상황이지만(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그 덕에 우리는 하늘아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틀라스’라고 불린 의사는 자신이 떠받치던 하늘에서 손을 내려놓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