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명예교수

농촌여성들이 과감하게
자기결정권을 주장해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부당한 대우는 물론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이 개선…
그러려면 농촌여성들의 성차별이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화 돼야

▲ 박옥임 순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명예교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9년 여성신년인사회에서의 일이다. 이날 행사의 슬로건은 ‘평등을 일상으로’였으며 건배사도 그것으로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대한민국 여성계가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다짐이면서, 아직도 여성들에게 평등이 일상화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 사회가 아무리 민주화되고 자유를 누린다 하더라도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평등이란 인간의 존엄, 인격, 가치, 행복추구에 있어 차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 가운데 성평등은 여성이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동등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한국의 성평등은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생활에서 성평등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농촌여성의 성평등 현실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말해 도시보다 성평등이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성차별이나 비하의 가부장적인 잔재와 타성에 젖은 관습으로 고통 받고 있는 농촌여성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농촌여성들이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평등을 일상에서’ 실현하자는데 적극 공감하는 것이다.
실제 성평등을 저해하는 여성차별은 남성의 특권을 이용한 권력과 통제의 수레바퀴처럼 반복되고 있다. 기회를 제한하고, 겁을 주고 위협하며, 모욕하고 고립시키며, 과소평가하고 비난하며, 경제적인 보상에 인색하거나 무시하고, 심지어는 강요와 폭력 등으로 여성의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교육의 기회에서 차별받은 농촌여성들의 경우다. 요즘 농촌 마을회관에 가면 한글교실이 열리는 곳이 있다. 며칠 전 TV에서 한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니까 새로운 세상을 산다”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글자 눈이 뜨여서 버스 타기도 쉽고 간판도 보고 책도 읽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동안 손주들이 책 읽어 달라고 할 때 속을 태웠는데, 이제는 걱정이 전혀 없다고 한다. 늦게나마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만족이고 기쁨이라 한다.
경제부분에서 권리가 배제된 농촌여성의 경우다. 도시에 살던 아들이 정년퇴직 후 고향에 귀농하겠다고 해서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얼마 후 아들이 전·답·임야의 명의 변경을 요구하기에 평생 허리띠 졸라매고 일궈 놓은 것이라 일부는 본인 앞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니 언성을 높이고 대들더라는 것이다. 아버지 이름으로 등기된 것이니 아버지 재산이지 어머니는 뭐 해놓은 것 있냐고 윽박지르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는 것이다.

폭력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농촌여성의 경우다. 결혼 초기에는 시어머니의 구박과 욕설, 나중에는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때리고 발로 밟아 갈비뼈도 부러지고 얼굴에 흉터도 남는 등 무서워서 함께 살 수 없다고 두려움을 토로했다. 집안일은 손도 까닥 안 하는 남편이라 농사일도 남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았는데 평생 주눅 들어 살고 있다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분노와 고통스러움을 호소한다.

이렇듯 농촌여성들의 성평등 현실은 억울하고 분노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자각과 인식이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가능한 것이다. 여성 스스로가 삶의 주체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실천한 것이다.
이제부터 농촌여성들이 과감하게 자기결정권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에서 농촌여성들의 성차별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화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농촌여성들 조직이 서로 연대하도록 지원한다면 훨씬 더 역동적인 성평등 활동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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