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78)

1960년대 후반 때의 일이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시골에서 상경해 E여대 언저리에서 하숙을 했다. 이 하숙집은 오래 전 홀로 된 아주머니가 우리 또래의 고등학생 딸 하나를 데리고 호구지책으로 하숙을 치고 있던 터였는데, 문제는 밥 반찬이었다. 겨울만 되면 허구한 날 싼값에 짝으로 들여놓은 동태국에 ‘덴푸라’ 어묵반찬 이었고, 꽁치·고등어 구이에 계란프라이는 대여섯 하숙생들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고만고만한 하숙생들이 모두 모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의에 차 변함없는 하숙집 밥상 성토에 나섰고, 급기야는 밥 한술 뜨지 않은 밥상을 그대로 내보내는 일종의 스트라이크(동맹파업)에 돌입했다. 하숙집 아줌마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었겠는가. 아무튼 당시 겨울동태인 명태는 그처럼 값싸고 흔하디 흔한 국민생선이었다.

194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연간 명태 어획량이 무려 27만 톤이던 것이 1971년 당시 술안주감으로 인기가 치솟던 명태새끼 노가리의 어획을 정부가 허용, 명태 씨가 마르기 시작해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10만 톤 이다가 2008년도부터는 아예 씨가 말라 자취를 감춰버렸다.

명태는 생물학적 분류로는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바닷물고기다. 조선조 인조 때 함경도 명천에 사는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 하여 ‘명태’라 이름지어졌는데, 가공방법과 생김새, 잡는 방법과 장소, 잡는 시기에 따라 각각 달리 붙여진 이름이 무려 50가지에 이른다. 시린 동해바다에서 바로잡아 건져올려 싱싱한 선태·생태부터 얼리고 건조시키는 방법과 과정에 따라 동태, 북어, 황태(노랑태), 노가리, 코다리, 짝태, 북훙어, 먹태(흑태), 찐태, 백태, 깡태, 골태, 간태(염태), 관태, 더덕북어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가 하면 생김새, 모양에 따라서는 무두태, 파태, 낙태, 동태, 꺽태, 왜태, 애태(아기태), 올 태, 알배기, 이리박, 그리고 초겨울 도루묵떼를 좇는 명태를 은어바지, 함남지방에서 부르는 섣달바지, 금처럼 귀한 물고기라서 금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명태로 만드는 음식 또한 이름만큼이나 다양하다. 김칫소, 명태찜, 생태찌개, 북어국, 황태국, 명태국, 북어포무침, 알로 만든 명란젓, 창자로 만든 창란젓, 머리로 만드는 귀세미젓, 아가미로 만드는 서거리젓, 간유가 있고, 회냉면에 고명처럼 얹어내기도 한다.

특히 명태식혜는 꾸덕꾸덕 말린 명태를 토막낸 다음 식은 밥이나 된 찰밥을 섞어 엿기름 가 루와 무채, 고춧가루, 생강,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한 다음 소금간을 약하게 해 삭힌 젓갈로 뼈가 삭으면 먹는 흔치 않은 저장 발효식품이다.

그런 명태가 지금 한창 제철인데도 국산 명태는 눈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지난 달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씨가 말라 보이지 않던 자연산 명태 2만 마리가 잡혀 온 나라 안이 들썩였다. 명태가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그 많던 명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