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살아있는 생명에겐
삶은 항상 버거운 일...
100년씩 몸을 유지하고
의미 있게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녁이 일찍 찾아드는 겨울 밤, 강력한 한파가 며칠을 계속 영하 10도 아래로 수은주를 끌어내린다. 산골의 외딴집은 물이 얼지 않게 수도꼭지를 틀어 물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를 겨울집을 지키는 노랫소리로 삼아야한다. 해마다 거쳐 가는 계절인데도 길들여지지 않는 낯선 추위다. 내일은 어떨까? 올 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으려나. 느슨한 커튼을 바싹 여며 닫는다.
영하를 밑도는 추위에서는 과수원 배나무 가지치기도 할 수 없다. 이런 농한기에는 방콕을 하며 집안에서 소일거리를 찾는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보니 김형석 교수가 출연을 하는 장면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내게 영향력이 컸던 그분이 100세라는 것부터 내겐 놀라움이었고 영상으로나마 뵐 수 있음은 큰 반가움이었다. ‘인간극장’ 프로에 신년기획으로 촬영한 것인데,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 모든 사람의 관심에 잘 맞아떨어지는 프로였다.
내가 생각했던 100세란 늙어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자리보전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김 교수의 100세가 궁금했고 무얼 드시고 어떻게 사시는지, 지극히 표면적인 관심으로 충만했다. 담담하게 그려가는 노 교수의 일상이 공개되면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닷새 동안 방영되는 내용을 차례로 보면서 난 얼마나 무게 없는 얄팍한 삶을 사는지, 생각 없이 살아왔는지 반성이 물밀듯 몰려왔다. 죽음에 관한 책은 많지만 60대 이후의 나이에 어떤 계획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를, 그 세월을 살아본 자의 올바른 소신과 철학적 깊이로 아낌없이 조언해주고 있다.
늘 누구에게나 소년처럼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 꼿꼿하게 지팡이도 없이 걸어 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다니시는 모습, 나이가 들수록 몸의 기능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타고난 건강이신지 백세의 나이를 버티시는 노익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금 우리 나이에도 쉽지 않은데 책상에 앉아 독서하시는 모습, 집필하시는 모습, 다양한 청중을 상대로 적절한 내용으로 강연을 하시는 모습, 그것도 1년에 160회 강연을 하시는데 방송 중에 눈이 내리는 날 강원도 양구까지 가서 강연을 하시는 걸 보니 정말 놀라웠다.
일정한 시간에 검소한 식단으로 소식하고 매일 뒷산을 산책하는 모습, 친구와 가족을 다 떠나보내고도 홀로 견디시며 오로지 인간애로 이웃과 사회에 헌신 봉사하시는 모습.
“100세를 살아보니 어때요?”라는 어린 PD의 질문에 “행복하지요”라며 웃는다. “무엇이 행복일까요?” “사랑으로 하는 고생, 이웃과 사회에 나누는 삶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것이 모두 자신에게로 돌아오거든요~”
살아있는 생명에겐 삶은 항상 버거운 일이다. 100년씩 몸을 유지하고 의미 있게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해 벽두에 노 교수의 인생 조언에 큰 도전을 받는다. 인간은 60이 넘어야 철이 들고 그때부터 80까지가 인생의 전성기라 하니 나도 아직은 해 볼만 나이일까? 그는 자신의 일이 자기를 건강하게 지켜왔다고 했다.
따스한 겨울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마른 찻잎을 넣어 우린 녹색의 찻잔으로 뛰어든다. 달콤하지는 않아도 시원하고 구수한 향기가 주변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