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특집 - 농촌성평등의 첫걸음, 가족경영협약 : 우리 이렇게 약속했어요-경기 포천 신현숙·조영수 부부

▲ 지난해 가족경영협약을 맺은 이후 남편과 신현숙 회장은 경영계획을 함께 만들어 봤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사생활도 존중하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매일 보는 가족인데 왜 약속을 정하고, 그걸 또 사인까지 해야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몇 년 전 가족경영협약에 참석한 한 남편이 한 이야기다. 협약을 맺으러 오기 전 취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그의 솔직한 심정은 반대로 가족경영협약이 필요한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룰(rule) 즉, 약속은 오히려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가족, 더군다나 성평등 인식이 도시에 비해 부족한 농촌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다. 실제로 협약을 맺고 성실하게 실천을 하고 있는 농가일수록 그 효과에 만족하고 있다. 지난해 남편 조영수씨와 가족경영협약을 맺은 한국생활개선포천시연합회 신현숙 회장이 바로 그 사례다.

가족경영협약, 농촌여성의 권익 향상 실질효과 커
주먹구구식의 농사 아닌 경영계획·수익분배 룰 정해
남편은 술을, 아내는 TV 시청 줄이기로 약속하고 실천

가공사업하며 부부만의 룰 필요성 느껴
신현숙 회장은 몇 년 전까지 남편과 함께 포천에서 음식점을 운영했었다.
“내가 직접 키운 유기농 농산물로 음식점 식재료를 충당했었어요. 그래서 포천의 우수한 농산물을 알린다는 자부심도 컸죠.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남편은 다리가, 저는 허리가 계속 아파 결국 폐업을 하게 됐어요. 가족의 건강이 제일이니까요.”
음식점을 접은 후 그동안 수도작 농사와 밭농사 위주에서 특용작물에 집중하기 시작한 신현숙 회장.
그리고 지금 사는 곳인 숯골마을의 이름을 따 ‘숯골장류영농조합법인’을 세웠다. 예전부터 된장을 비롯해 전통장을 직접 담가 식탁에 올렸던 솜씨에 사업적 수완을 더해 여동생,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게 됐다.

지금은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고, 유기농식초도 시판을 앞두고 있어 새로운 희망을 느끼고 있다는 신 회장은 그래서 과거 흔히 생각하던 부부에서 벗어나 사업적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자연스레 생산은 남편이, 신 회장은 가공과 판매로 일이 나뉘다보니 일과 수익의 분배는 물론 생활적인 면까지 서로 존중하는 가족경영협약을 그래서 지난해 맺게 됐다.
남편 조영수씨는 경영계획을 직접 정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와이프와 저는 큰 돈벌이보다 우리 부부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최우선의 목표를 두자고 합의했어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이 부치는 농사 대신 특용작물에 집중하기로 한 것도 중요한 점이었죠. 그리고 역할도 재배는 제가 도맡고, 대신 발효와 가공, 홍보, 판매 등은 와이프가 책임지기로 해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나누기로 약속했죠. 자산 역시 부부 합의로 결정하기로 했어요.”
협약서는 한낱 종이에 불과하지 않았다. 과거의 주먹구구식의 농사일을 나눠하던 관계가 아니라 신현숙과 조영수라는 공동경영주로서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다. 그 의미가 과히 적지 않다고 부부는 공통적으로 말했다.

모든 결정은 부부 간의 합의로 정해
마을에서 아직은 젊은 축에 들지만 그래도 나날이 떨어지는 체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근로시간도 정확하게 명시했다. 농번기에는 6시간을 작업하되 오후 2시간만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자산을 포함해 모든 걸 부부 합의로 결정하기로 한 것도 두 딸 역시 장성해 도시로 출가하면서 농사일은 오롯이 부부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건강을 지키고 서로의 취미생활, 남편의 자전거 동호회활동을, 신 회장의 신앙생활을 서로가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1주일에 남편은 3일만 술을 마시기로 한 이후, 남편은 신 회장이 놀랄 정도로 술을 스스로 절제하게 됐다고 한다. 자연스레 잔소리도 줄어들었다.

신 회장은 TV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 종일 TV만 보던 걸 오후 12시 이후에는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편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니 신 회장도 덩달아 안 지킬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보여준 신뢰에 자신 역시 응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신현숙 회장은 가족경영협약에 추가로 필요한 교육을 제안했다. 장류 이외에 생강, 파프리카, 마늘 등 20여 가지 천연식초의 상품화를 앞두고 있는데 이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고 싶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홍보하거나 판로를 개척하는 일은 아직 서투르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협약은 1박2일 동안 경영계획, 역할분담, 이익분배, 근로조건과 기타사항을 서로 적어 가족끼리 교환하고 실천할 것을 약속하는 걸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신 회장의 제안처럼 참여하는 가족들 대부분이 농사일 이외에도 가공과 유통 등 사업적 파트너로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민간 전문가의 교육이 추가된다면 가족경영협약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마지막으로 가족경영협약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제가 취임사로 농촌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었죠. 권익향상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가족경영협약을 전국 생활개선회원으로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정말 클 것으로 저는 확신해요. 우리 부부부터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저처럼 가공을 하는 사람을 위해 가족경영협약 때 이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도 함께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 아내  신현숙씨

“남편이 신뢰 보여주니 약속 지키게 돼”

협약을 맺고 남편과 동등한 위치의 경영인으로 인정받게 된 점도 좋지만 생활적으로 약속하고 그걸 서로 지켜나가는 점도 만족스러워요. 술을 좋아하던 남편이 3일만 음주하기로 약속하고, 그걸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니 저도 남편과 한 약속을 안 지킬 수가 없었어요. 저도 TV를 끼고 살았었는데 보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쉬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니 우리 부부가 앞으로 두 발씩 내딛게 되더라구요.

 

 

■ 남편 조영수씨

“자전거 타는 걸 인정해줘 고마워”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시작한 게 자전거였어요. 재미가 점점 붙어 부산에서 속초, 거리로는 400km가 넘는 거리를 4일 만에 자전거로 가기도 했어요. 시간만 나면 자전거로 안 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다치기도 하고, 나이도 있으니까 아내의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협약서에 농한기에 오전 2시간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아내가 인정해주기로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아내의 신앙생활을 존중하기로 했죠. 서로의 사생활을 인정하니까 훨씬 사는 게 편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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