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9)

▲ 나폴레옹시대의 엠파이어 드레스

적절한 양의 옷으로
추위도 이기고
추위 적응력까지 기르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황제로 재위하고 있을 때였다. 신고전주의 사상이 밑바탕을 이루면서 사람들은 옛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동경하고 따랐다. 옷을 놓고도 그랬다. 허리선이 바로 젖가슴 아래까지 올라가서 발목까지 흘러내리는, 그래서 치마의 주름이 마치 그리스 건축물의 원주처럼 표현되는 이른바 ‘엠파이어 스타일’이 고개를 들었다. 유럽인들은 이제까지 입었던 두껍고 투박한 모직물에서 해방돼, 얇고 하늘거리는 인도의 머슬린에 매혹돼 가던 시기였다.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따라 흘러내리듯, 나플거리는 얇은 천으로, 여인의 하체가 그대로 비쳐 보이도록 하는 이 유행이 필경 전 유럽을 휩쓸었다. 엠파이어 스타일은 그렇게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 후 퇴장하기까지 약 10여 년 간 거센 유행을 탔다.

이 무렵 유럽은 찬란한 로코코 문명을 이뤘던 귀족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시민 계급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의복 역시 이 흐름에 발맞춰 갔다. 남성복도 귀족위주의 사치스럽고 불편한 옷에서 실용적이고 편안한 형태로 바뀌었고 여성복도 획기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 거센 변혁 이전에 인체의 곡선을 지나치게 과장하기 위해 고래의 뼈나 수염 등을 넣어 만든 코르셋과 스커트 속에 입던 파니에(panier)라는 틀(hoop)을 벗어야했다. 이 틀은 넓게 펴질수록 귀족이었으므로 여러 재료가 동원됐다. 고래 뼈, 등나무줄기, 철사(metal) 등을 넣어, 맨 밑단은 가장 넓게 하고 위로 올라 갈수록 좁혀가며 여러 층으로 만들어 입었다.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역사가 바뀌면서 우아한 여성의 기준이 달라진다. 옷을 가볍게, 그리고 조금 입는 것이 필수가 됐다. 물론 스커트 밑에 입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틀도 벗어 던져야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시대의 우아한 부인은 ‘Should not wear more than eight pounds of clothing, including jewels and shoes’, 즉 ‘보석과 신발을 포함해 8파운드 이상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8파운드는 3.5㎏이 넘는 무게로, 현재 우리의 옷과 비교하면 몇 배나 무거운 양이지만, 18세기에 속에 받쳐 입은 틀 하나의 무게만도 대단했던 것과 비교하면 짐작이 가능하다.

오늘날처럼 난방 시스템이 완전하지도 않았고, 아름답기 위해 계절에 관계없이 얇게 비치는 옷을 가볍게 입었으니 그 폐해가 어찌 없었겠는가. 추위에도 이렇게 얇게 입고 인플루엔자에 걸려 죽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나폴레옹 황제비 조세핀도 바로 그 유행을 따르다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인들은 아름다움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듯 그 얇은 차림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인체를 보호하는 옷의 기능이 유행에 밀려 벌어진 비극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며 독감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 인체 스스로가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엠파이어 스타일 시대에는 너무 춥게 입어 생명을 잃었다면, 적절한 양의 옷으로 추위뿐 아니라 추위 적응능력까지 함께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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